불굴의 레슬러 정지현(31)이 ‘한국 레슬링 노골드’의 한을 풀었다.
정지현은 30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1㎏급 결승전에서 딜쇼존 투르디에프(우즈베키스탄)에게 9대 0 테크니컬 폴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로써 정지현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부터 이어져온 대표팀 ‘노골드’ 행진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지현의 지난 10년은 ‘체중과의 전쟁’이었다. 그는 21세이던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레슬링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당시 체급은 60㎏급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성장 중이던 정지현은 체중이 점점 불어나면서 고된 감량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다음해 66㎏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그러나 체급을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해 전국체전에서도 경쟁자들에게 밀리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2006 도하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했다. 베이징올림픽을 1년 앞둔 2007년엔 60㎏급 복귀를 선언하고 다시 10㎏ 이상 감량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8강에서 탈락했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아쉬운 은메달, 2012 런던올림픽에선 또 다시 8강에 머물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결국 그는 다시 66㎏급으로 체급을 올렸지만 올해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신설 체급인 71㎏급에서 예기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고, 정지현은 자신의 체중과 꼭 같은 체급에서 마침내 꿈에 그리던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체중 감량을 통해 손해만 본 것은 아니었다. 스피드와 지구력은 이전보다 향상됐다. 올해 울산 남구청에 정지현을 입단시킨 김만기 감독은 “평소 70㎏이던 선수가 무리해서 60㎏까지 빼 왔으니, 얼마나 지쳤겠느냐”면서도 “체급을 올리니 힘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스피드와 지구력은 오히려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정지현은 이번 대회에서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전했다. 어깨에 얹혀 있던 ‘에이스의 무게’를 덜어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원래 기술과 경력에서는 세계 최고의 선수인데, 20대 초반부터 한국 레슬링의 자존심이라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부담을 크게 느낀 것 같다”며 “‘이제는 한번 즐기면서 해 보자’며 데려왔다”고 말했다.
서른을 넘긴 나이. 주변에서는 그에게 은퇴하고 코치로 나설 것을 권유했다. 정지현은 “예전처럼 벼랑 끝의 부담을 짊어지지 않고, 그저 편안히 나서겠다”며 이번 대회에 도전했다. 그러면서도 아내와 아이들을 경기장에 초청한 그는 “부끄럽지 않은 가장의 모습을 보이고 금메달을 따겠다”며 조용히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마지막 도전에서 오래 기다린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고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이자 남편이 됐다.
정지현은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아테네올림픽 이후 국제대회 금메달이 거의 없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었기에 오늘의 영광이 있었다”며 10년 만에 환한 웃음을 내비쳤다.
인천=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인천아시안게임] 오뚝이 정지현 쾌거… '레슬링 노 골드' 한 풀다
입력 2014-10-01 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