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주년 소리판 벌이는 장사익 “아직은 청년기 초심으로 돌아갑니다”

입력 2014-10-01 03:58
“좋아하는 시를 10년이고 계속 읊어본다. 그러다 보면 고저장단이 나오고 멜로디가 떠오른다”는 소리꾼 장사익. 그는 “평생에 좋은 곡 하나 만드는 꿈을 꾸고 있는데 이미 그게 나왔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엮는 작업(작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주 기자

“국화는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쯤 피어요. 꽃이 핀다고 하면 다들 봄을 생각하잖아요. 그땐 누가 먼저 피는지 난리가 나잖아요. 국화는 가만히 있다가 남들 다 사그라졌을 때쯤 천천히 얼굴을 내밀죠. 꽃도 그렇게 피는 시기가 있더라고요. 사람도 그래요.”

가을비가 내리던 29일 소리꾼 장사익(65)을 만났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는 10월 30∼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울산 대구 광주 부산 등 7개 도시를 돌며 소리판을 벌인다. 공연 제목은 그의 대표곡과 같은 ‘찔레꽃’(1997)이다.

그는 “공연 제목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미가 있다”며 “20주년이면 아직 ‘청년기’다. 앞으로 어떻게 노래할 것인지 보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인왕산 자락에 둘러싸인 세검정로 그의 집에서 진행됐다. 라디오를 통해 전통음악의 선율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큰 창 너머로 보이는 산줄기와 빗물을 머금은 나무 향기를 배경삼아 장사익은 시를 읊었고 노래 한 자락을 걸쳤다. 대화를 이어나갈 때는 여느 신인가수 못지않게 겸손했고 소박했다.

“이미자 선생님 데뷔 55주년, 남진 선생님 50주년에 비하면 저는 아직도 까마득한 후배죠. 2004년에 ‘10년이 하루’라는 공연을 했었는데 벌써 20주년이 왔네요. 저에게 지난 20년은 단 이틀 같아요. 이렇게 행복하게 세상을 즐기면서 사는 게 믿기지가 않기도 하고요.”

장사익에게 노래는 만 45세, 적지 않은 나이에 도착한 종착지였다. 보험회사, 무역회사, 카센터 등 16개의 직장을 거친 뒤였다. 태평소를 연주했던 경험을 살려 노래로 직업을 갖겠다는 큰 도전을 한 것이다. 1994년 국악과 대중가요를 접목한 ‘장사익 소리판 하늘가는 길’ 공연을 올렸고 이후 97년 ‘찔레꽃’이 수록된 1집 ‘하늘가는 길’을 내면서 그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갔다. 가요, 재즈 등 다양한 장르와 국악을 섞어내는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대중은 ‘소리꾼’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그는 국화처럼 늦은 가을날 만개했다.

장사익은 “소리꾼이라는 이름은 명창들에게 불러주는 것 아니냐”면서 “그분들처럼 정도(正道)를 지키고 품새를 가다듬어 노래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황송한 이름이다”라고 말했다.

장사익은 이번 공연에서 ‘찔레꽃’과 함께 ‘허허바다’ ‘꽃구경’ 등 대표곡을 주로 선보인다. 공연에 앞서 총 8곡이 담긴 새 앨범도 발표한다. ‘꽃인 듯 눈물인 듯’이란 시를 인용한 동명의 곡,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서풍부’ 등이 담길 예정이다. 구슬프면서도 시원스럽게 내지르는, 장사익 특유의 위로와 흥의 음악을 기대해 봐도 좋겠다.

“내 모습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요. 무대에 설 때 화장도 안 합니다. ‘주름이 있고 형편없이 생겨도 노래할 수 있구나’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