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뛰노는 불곰·사슴… 야생동물·인간의 ‘아름다운 공존’

입력 2014-10-01 03:08
일본 홋카이도 시레토코 국립공원 해안가에서 어미 불곰을 따라 새끼들이 나들이에 나섰다. 수천년 전부터 이곳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온 불곰(ヒグマ·緋熊)은 원주민인 아이누족이 신(神)을 뜻하는 ‘카무이’로 부를 만큼 신성시했던 존재였다. 본격적인 홋카이도 개척 이후 한때 자취를 감출 뻔했으나 현재 이곳 국립공원에 300여 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컷 에조사슴(홋카이도 꽃사슴) 두 마리가 뿔싸움을 하고 있다. 순한 초식동물이지만 야생 사슴들은 겨루기를 하는 순간 매서운 눈빛을 뿜어낸다.
곱사연어 떼가 산란을 위해 오호츠크해의 거친 파도를 거슬러 하천으로 돌아오는 모습. 연어는 동면을 준비하는 불곰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위). 갈까마귀 한 마리가 햇살을 머금은 채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아래).
탐방객들이 보트에 탄 채 국립공원 해안가의 야생동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생태관광 가이드라인에 충실한 ‘착한’ 방문객들의 증가는 지역경제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위).‘1인 100㎡ 숲 살리기운동’에 참여한 기부자들의 명패가 시레토코 재단의 기념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아래).
국립공원 내 명승지 중 하나인 시레토코 오호(五湖) 제1호수 주변에는 탐방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한 높이 3m의 생태 고가목도와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야생동물이 우선인 이곳에서 사람들의 발길을 최소화하고, 동물들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현지 지방자치단체는 8억엔(약 80억원)을 들여 길이 800m의 친환경 탐방로를 만들었다.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의 작품 ‘파이 이야기’에는 소년과 호랑이가 작은 보트에 실려 단 둘이서 바다를 표류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영화로도 제작된 이 소설은 은유적으로 사람과 동물의 관계와 공존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소설에서처럼 동물과 인간의 공존은 현실적으로도 첨예한 과제다. 인간의 영역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동물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반달가슴곰 복원 10주년을 맞아 야생동물과의 공존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더부살이의 모델이 절실한 상황에서 먼저 비슷한 경험을 한 일본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일본 홋카이도 동북단에 위치한 시레토코(知床) 국립공원은 이런 공존 실험의 이상적인 선례를 만든 대표적 공간이다. 200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야생의 숨결이 인간의 배려와 온전하게 만나는 공간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울창한 원시림이 펼쳐낸 비경 속에서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뛰놀고, 그 위를 희귀 조류들이 날아다닌다.

이곳의 농밀하고 잘 보존된 환경에는 사람들의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각성, 그리고 주도면밀한 실천이 깃들어 있다. 특히 불곰의 서식환경 회복 과정은 특별한 상징성을 지닌다. 원주민들이 신성시했던 불곰은 한때 무분별한 포획 등으로 개체수가 급감했고, 멸종위기에까지 직면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1964년 6월 시레토코 반도 내 386㎢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 특별보호구역으로 만들었다. 이후의 꾸준한 보호정책은 불곰의 서식처를 회복시켰고, 사람과의 접촉을 관리해야 할 정도로 개체수도 늘었다.

지난달 17일 일본 환경성 현지 사무소에서 만난 마쓰나가 아키미치(40) 주임은 “불곰이 유례가 없을 만큼 면적당 높은 서식 밀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인위적 개입을 배제하는 방침과 함께 곰보다 도리어 사람을 관리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노력 외에 현지 주민들의 의기투합도 자연을 지켜낸 또 다른 원동력이었다. 주민들은 모두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기금을 모아 1988년 ‘시레토코 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1인 100㎡ 숲 살리기’와 ‘한 계좌 8000엔 기부운동’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현재까지 6만여명의 참여로 5억엔(약 50억원)의 예산이 확보됐고 재단은 국립공원 내 사유지를 매입, 개발 열풍으로부터 환경자원을 지켜냈다.

현장을 함께 살펴본 채희영(49) 국립공원연구원 자연자원조사단장은 “인간과 야생동물이 이상적으로 공존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지향점을 제시하는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야생동물들의 공간을 사람들이 빌려 쓴다는 마음으로 큰 틀에서 공존의 이상적인 공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곳적부터 땅에 깃들어 온 본래의 주인들인 동물들에게 인간은 그동안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공존이라는 건강한 관계성의 회복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들이 갖춰야 할 본연의 도리에 가깝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샤리(일본)=사진·글 구성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