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미경 (15) 준비없이 뛰어든 선거 “하나님의 조직을 주세요”

입력 2014-10-01 03:47
제18대 국회 국방위원으로 국정감사에 나선 정미경 의원.

2008년 처음 정치를 시작하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조직이 있나요.” 조직이 없다고 대답하면 바로 “조직도 없으면서 무슨 정치를 한다고 참….” 한심하다는 투였다. 하도 이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 정치하려면 정말 조직이 없으면 안 되는 거구나, 조직이 있어야 하는 거구나 했다.

그래서 또 기도하게 되었다. 조직을 달라고 주님께 매달렸다. “조직이 있어야 한대요. 하나님 조직을 주세요. 사람의 조직 말고 하나님의 조직을 주세요.” 이렇게 기도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막상 선거에 뛰어드니 나 말고 내 대신 명함을 돌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법적으로 나 이외에 한 사람 더 가능한데 직계존비속 또는 배우자만이 할 수 있다.

처음 정치한다고 할 때 남편은 진지한 얼굴로 “당신이 원하면 해야지. 그런데 나를 끼워 넣지는 말아줘”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남편은 처음부터 선거운동에서 제외시켰다. 친정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직 어린 손자들을 보살피셔야 했다. 남은 분은 시아버지뿐이었다.

나는 이분을 늘 아버지라고 부른다. 언제나 내편이시고, 충남 청양에서 끊임없이 농사일에 매달리며 고향을 지키는 분이시다. 결혼하고 며느리인 나는 매일 안부 전화를 올리는데, 아들이 전화 한통 없자 급기야는 내게 “아무래도 종업(남편)이가 집 전화번호를 잊어버린 것 같다. 네가 좀 가르쳐주렴” 하신 분이다. 아버지는 직접화법 대신에 늘 ‘스리쿠션’으로 우리들을 혼내신다. 그런 아버지가 더 좋다.

내가 정치한다고 했을 때 친정 엄마와 남편은 못마땅해 했지만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좋은 일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기회가 온다면 해야지” 하면서 나를 응원하셨다. 남편이 “왜 아버지는 늘 이사람 편이시냐. 남자인 네가 정치하지 왜 만날 여자가 나서냐. 왜 남들처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냐”고 농담을 할 때도 정색하시며 “너 같은 남자는 셌다”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다.

아버지는 걱정 말라며 직접 명함을 돌리셨다. 당시 79세였다. 전국에서 며느리 선거운동을 하신 시아버지는 우리 아버지가 유일하지 않을까? 아버지는 주민들을 만나면 “청양에서 왔시유. 우리 애기가 한나라당 정미경예유. 진짜 괜찮은 애예유. 믿으셔도 돼유”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선거운동은 뜻하지 않는 조직을 만들어냈다. 며느리 선거운동 해주러 청양에서 시아버지가 올라오셨다고, 햇볕에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어르신이 며느리 선거운동 한다는 얘기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그 ‘아버지’를 도와드려야 한다고 수원에 살고 있는 충청도분들이 자진해서 움직여주셨다.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조직이 만들어진 것이다.

젊은 날 결혼이 하고 싶어 내가 찍어 기도한 남자는 주시질 않고, 하나님이 찍은 남자 이종업을 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충청도 때문이었구나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나는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 조직을 달라는 내 기도에 응답이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셨다.

그렇게 국회의원이 됐다. 그리고 이내 하나님께 합당한 첫 일이 주어졌다. 나라를 지키는 일이었다.

우리 지역구에는 수원전투비행장이 있다. 18대 국회 후반기 국방위원회를 가기로 마음먹고 전반기에 야간 국방대학원을 다녔다. 여자라 군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제대로 준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졌다. 국방부 장관이 교체되면서 청문회를 하게 되었다. 기도했다. 희생당한 우리의 아들들을 위해 지금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달라고 기도했다. 한데 그때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해병대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 역사(役事)의 예고였다.

정리=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