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비정상의 정상화’라는데…

입력 2014-10-01 03:21

정부의 핵심 국정운영 기조인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은 각별하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보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새 정부의 개혁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비정상의 관행을 정상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며 첫 발언을 한 뒤 지금까지 1년3개월여 동안 ‘비정상의 정상화’를 36회 언급했다. 한 달에 2.5회 정도다. 최근에는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법무부가 보고한 ‘파산자의 재기를 위한 법제 정비’를 “비정상의 정상화의 좋은 사례”라고 강조했다. 주로 국무회의(9회), 수석비서관회의(7회), 부처 업무보고(5회)에서 피력했지만 신년사, 광복절 경축사, 담화문 등 대국민 직접 호소는 물론 외국인 투자 기업인 간담회, 경찰대학 졸업식, 민주평통 전체회의, 교육계 신년교례회, 재외동포 간담회 등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 사례로 든 내용도 다양하다. 지난 3월 4일 국무회의 때 “선거 분야에서의 정상화가 기대된다”고 말한 것을 비롯, 지난해 7월과 8월의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각각 대학의 교비 부당 지원과 세제 부문의 정상화를 역설했다.

대통령이 역점을 두자 정부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총리실은 지난해 12월 생활과 밀접한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 95개를 선정했고, 지난 8월에는 90개를 추가했다. 역설적이게도 실생활 체감형 과제 중심으로 선정하다 보니 거창하게 국정과제라고 할 것 없이 해당 부처나 지자체들이 얼마든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들도 포함됐다. 또 지난해 7월 태안 해병대 캠프 사건과 올해 초 100여명의 사상자를 낸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 등이 있었지만 뒤늦게 세월호 참사를 겪고서야 안전 분야 과제를 선정하는 등 뒷북 대응이란 비판도 받았다. 아파트 청약률처럼 지금도 금융결제원이 공개하고 있는 것을 ‘공개 의무화’라며 과제로 선정, 구색 맞추기란 지적도 있다.

아무 곳에나 ‘비정상의 정상화’를 갖다 붙이기도 했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12일 주민세와 지방세 인상을 발표하면서 “비정상적인 지방세를 정상화하는 수준에서 지방세 개편안을 마련했다”고 밝혀 가뜩이나 서민 증세로 부아가 난 국민들의 화를 더 돋웠다. 전북의 한 경찰서는 자체 ‘비정상의 정상화’ 태스크포스(TF)까지 운영해 ‘과잉’이란 느낌을 주고 있다.

약간 부족하지만 생활 속의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를 제대로 된 상태로 돌려놓는다는 점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는 좋은 정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 과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비정상으로밖에 볼 수 없는 사안들도 적지 않은데, 이것들은 선뜻 정상화될 것 같지 않아 갑갑하다.

‘참사’라는 비아냥감이 된 지 오래인 청와대의 거듭된 인사 실패나 여당 국회의원도 증세라는데 아니라고 빡빡 우기는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의 왜곡된 인식, 통일은 대박이라면서 막상 유엔에 가서는 북한을 자극한 대통령의 섣부른 발언, ‘사이버 망명’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검·경의 마구잡이 통신기록 조회 등은 누가 봐도 정상화돼야 하지 않는가. 압권은 국세청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세금 신고 내용이 석연치 않아도 131만개 중소기업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발상은 비정상을 넘어 무개념이다. 엉터리 신고를 해도 그냥 두겠다는 비정상 국세청의 정상화는 누가 언제 하나.

국무총리실은 ‘비정상의 정상화’의 의미를 ‘기본이 바로 선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기본이 바로 선다는 것은 단순히 부처별 과제 몇 개가 해결된다고 달성되는 목표가 아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어젠다로서 갖는 외연보다는 핵심 가치를 어떻게 내포할지가 더 절박하다. 비정상과 정상을 가늠하는 척도는 계량화된 실적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될 공동선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자칫 ‘비정상의 정상화’를 정상화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