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난봉가와 쌍가락지 노래
1980년대 대학가에서 많이 불렀던 노래 중에 ‘진주난봉가’라는 것이 있었다. 한 여인이 남편 없이 시집살이를 3년 동안 하고 있었는데 정작 돌아온 남편이 사랑방에서 기생첩과 희롱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자살한다는 스토리다.
이런 노래를 이른바 민요에서는 ‘시집살이 노래’로 분류하고 있다. 스토리보다는 ‘산도 좋고 물도 좋아/ 우당탕탕 두들기는데’라는 대목이 마음에 들어 몇 번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경상도 민요 중에 짚신 삼을 때나 베 짤 때 불렀다는 ‘쌍가락지 노래’가 있다. 다음은 경북 고령에서 채집된 가사이다.
‘쌍금 쌍금 쌍가락지/ 호작질로 닦아내여/ 먼데 보니 달일레라/ 젙에 보니 처잘레라/ 그 처자 자는 방에/ 숨소리가 둘일레라/ 홍둘바시 오라버님/ 거짓말씀 말아주소/ 동남풍이 딜이 부니/ 풍지 떠는 소릴레라/ 죽고지라 죽고지라/ 밍지수건 목을 매고/ 자는 듯이 죽고지라/ 엄마 우리 엄마/ 요내 나는 죽거들랑/ 앞산에도 묻지 마고/ 뒷산에도 묻지 마고/ 연대밭에 묻어 주소/ 연대 꽃이 피거들랑/ 날만 이기 돌아보소/ 눈이 오마 쓸어주고/ 비가 오마 덮어주소.’
‘호작질’은 낙서를 하는 등의 손으로 조금씩 무엇을 하는 행위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젙에 보니’는 가까이 보니, ‘딜이 부니’는 몹시 부니, ‘밍지수건’은 명주수건, ‘날만 이기’는 날만 여겨이다.
다만 ‘홍둘바시’가 해석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경상남도 함양에서 채집된 같은 노래의 가사에는 이 부분이 ‘홍당 박씨 오라반님’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이 부분은 사람 이름을 뜻하는 고유명사다. 이 노래를 알기 쉽게 재구성하면 이렇게 된다.
한 처자의 결혼을 앞두고 집안에서는 쌍가락지를 꺼내 광을 내는 등 혼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흉흉한 소문이 나돈다. 이 처자가 혼자 자는 방에서 다른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그 소문의 진원지는 친척 오라버니 혹은 동네 남자다. 이 처자는 그런 소문이 치욕스러워 목을 매어 자살하려고 한다.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경상도 민요 ‘상주모심기 노래’도 죽음이 모티브다. 그 가사 중에 ‘능청능청 저 비리 끝에/ 야속하다 우리 오빠/ 나도야 죽어 후생(後生)가면/ 우리 낭군 섬길라네’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비리’는 절벽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말뜻을 이해해도 이 노래 가사는 생략과 비약이 심해 이 가사만으로는 도무지 전체적인 내용을 알기 힘들다.
가사 통해 진짜 죽음을 길들이려는 의도
경상도 지방의 전설을 참고해 이 가사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낙동강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여자 둘이 있다가 강으로 떨어졌다. 이 둘은 시누와 올케 관계다. 그런데 남편이자 오빠인 남자가 한 여인밖에 구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연 누구를 구했을까. 바로 자신의 아내였다. 그러니 죽은 여자가 오빠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 이 노래 가사는 죽은 여동생이 부르는 넋두리로, 여자에게는 남편이 소중하니 다음 생에 태어나면 낭군을 섬기겠다는 각오로 끝난다.
이런 민요들은 전문 소리꾼이 부른 노래가 아니라 ‘정선아라리’와 같이 노동행위를 하면서 일상적으로 불렀던 노동요다.
늘 부르는 노래에 왜 이런 끔찍한 죽음의 이야기를 담았을까. 위에서 한 여자는 자살했고 한 여자는 죽으려고 하고 한 여자는 사고로 죽었다.
왜 이런 것을 민요로 되새김질해야 했을까. 우리가 한이 많은 민족이고 시집살이가 고통스러워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노래 속의 죽음을 통해서 진짜 죽음을 길들이기 위해서다. 죽음에의 친연성(親緣性)을 통해 우리는 저 두려운 죽음을 조금이나마 극복한다. 민요들은 그래서 강하다.
하응백 (문학평론가·휴먼앤북스 대표)
[청사초롱-하응백] 민요 속 여인의 죽음
입력 2014-10-01 0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