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습 (중)] 중국계 은행들 세계 1·2위 차지… 4곳이 ‘톱 10’ 진입

입력 2014-09-30 03:55

중국과 미국의 패권 다툼은 국제정치와 실물경제뿐 아니라 금융부문에서도 진행 중이다. 미국이 오랫동안 주도권을 쥐고 있던 곳에 중국이 거세게 도전해 균열을 내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는 이 같은 G2의 금융패권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점점 선택의 기로로 내몰리고 있다.

◇세계 1·2위 은행 모두 중국계…‘중국판 IMF’도 창설=영국 금융전문지 ‘더 뱅커’가 발표한 2014년 세계 1000대 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공상은행(ICBC)이 지난해에 이어 세계 1위 은행(기본자본 기준)에 올랐다. 지난해 5위였던 중국건설은행(CCB)은 올해 2위로 올라섰다. 중국은행(7위)과 중국농업은행(9위)까지 더하면 중국계 은행 4곳이 톱 10에 포함됐다.

10위권에 미국 은행은 JP모건체이스(3위) 뱅크오브아메리카(4위) 씨티그룹(6위) 웰스파고(8위) 등 4곳으로 중국과 같다. 나머지 10위권에는 영국 HSBC(5위)와 일본 미쓰비시UFJ(10위)만 이름을 올렸다.

중국계 은행은 자산규모뿐 아니라 수익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1000대 은행에 포함된 중국계 은행들의 지난해 세전 수익 합계는 2925억 달러로 전체 1000대 은행 수익 9200억 달러의 31.8%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미국계 은행들의 수익은 1832억 달러로 전체의 19.9%에 그쳤다.

중국계 은행들은 지난해 15억1000만 달러 규모의 해외 금융회사 인수·합병(M&A)을 추진한 데 이어 올해 2분기까지 10억9000만 달러 규모의 M&A를 진행하는 등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7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 정상은 ‘신(新)개발은행(NDB)’을 설립해 2016년부터 가동하기로 합의했다. NDB는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처럼 브릭스 등 신흥국에 자금을 융자하거나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기구인데, ‘중국판 IMF’로 보는 시각이 많다. IMF와 세계은행에 대한 미국의 주도권이 공고한 현실에 중국이 불만을 품고 주도적으로 만드는 기구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수년 전부터 IMF 내에서 투표권 확대를 요구해 왔지만 미국이 응하지 않아 번번이 좌절됐다.

NDB의 초기자본금은 5개국이 균등 출자하지만 본부는 중국 상하이에 생긴다. IMF와 세계은행 본부가 모두 워싱턴DC에 위치해 미국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NDB도 본부 위치부터 중국의 파워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중국 본토 주식시장 개방 본격화=중국 정부의 금융굴기(金融?起) 의지로 중국 자본시장의 개방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당장 다음달 중순에 실시되는 ‘후강퉁’에 관심이 쏠린다. 후강퉁에서 ‘후’는 상하이, ‘강’은 홍콩을 가리킨다. 둘을 통(通)하게 한다는 후강퉁은 상하이와 홍콩 주식시장의 교차 투자를 허용하는 제도로, 중국 증시의 본격적인 해외 개방을 의미한다.

후강퉁에선 홍콩증권거래소 투자자가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A주를 살 수 있고, 중국 본토 투자자들도 홍콩 주식(H주)을 살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을 비롯한 외국인의 중국 본토 증시에 대한 투자는 적격외국인기관투자가(QFII)나 위안화 적격외국인투자가(RQFII) 자격을 갖춘 기관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강퉁이 시행되면 외국인 개인투자자가 홍콩 증권사를 통해 자유롭게 중국 본토 A주를 거래할 수 있다. 현재 QFII(RQFII 포함)가 전체 중국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4%에 불과한데, 후강퉁이 시행되면 외국인 매매 비중은 3% 정도로 급증할 전망이다.

후강퉁에선 두 증시 간 차익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상하이A와 홍콩H 시장에 동시 상장된 주식 중 가격 차이가 있는 종목들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 때문에 저금리의 늪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는 한국 투자자들에게 후강퉁이 새로운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농협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증시는 주요국 증시에 비해 저평가된 시장이어서 후강퉁 개설로 인한 자본시장 개방효과가 클 것”이라며 “국내의 경우도 투자자들의 홍콩주식거래가 크게 늘고 중국시장에 대한 리서치 수요도 급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