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애리조나호와 세월호

입력 2014-09-30 04:07

미국의 3만2600t급 대형 전함 애리조나가 침몰한 것은 1941년 12월 7일이었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 시작된 직후 일본 함재기에서 발사한 철갑폭탄이 20㎝ 장갑을 뚫고 화약고에 명중하는 바람에 9분도 되지 않아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1500여명의 승무원 중 1100여명이 일거에 수장됐다. 1915년 취역해 미 해군의 주축을 형성하던 애리조나의 격침은 미국에는 치욕스러운 패배의 상징이었다.

애리조나호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은 것은 58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가라앉은 선체 위에 추모관을 건립하는 계획을 승인하면서였다. 정부 지원금을 포함한 50만 달러를 들여 선체를 가로지르는 직육면체 형태의 해상 추모관이 건립됐다. 메인룸에는 수장된 1102명의 해군과 해병 명단이 새겨진 대리석벽이 설치됐다. 생존자 가운데 전우 옆에 수장되기를 원한 32명의 작은 명패도 나중에 추가됐다.

패전 상징에서 역사의 전설로

62년 헌정된 애리조나추모관은 66년 국가역사유적명단에 등재됐다가 89년엔 국가역사랜드마크로 격상됐다. 추모관 인근에는 미주리함이 영구 정박해 있다. 일제의 항복문서 조인식이 열렸던 미주리함은 99년 미 서안에서 진주만으로 이동해 퇴역했다. 태평양전쟁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두 함정과 진주만 연안에 산재한 전쟁박물관 등은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미 대통령은 모두 이곳을 참배했고, 일본의 히로히토와 아키히토 국왕도 방문했다.

진주만에 들어오는 모든 미 해군과 해안경비대 등은 서항하면서 차렷 자세를 취해 애리조나호에 경의를 표하는 의례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연합훈련을 위해 입항하는 외국 선박들도 동참한다고 한다. 비극적 최후를 맞았던 애리조나호 승무원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바다의 전설’로 남았다.

세월호 참사의 현장인 진도 팽목항에는 지금도 실종자 가족들의 흐느낌이 계속되고 있다. 160일을 훌쩍 넘겼지만 10인의 가족들은 진도체육관과 임시 거처를 오가며 수색작업의 진전을 고대하고 있다. 정부도 마지막 한명을 찾을 때까지 수색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지난 7월 18일 여성 조리사 시신이 수습된 이후 70일이 넘도록 단원고 학생 5명과 교사 2명, 일반인 3명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가족들의 자책과 절망, 서슬 퍼런 한은 진도 하늘 끝까지 닿았을 터이다. 하지만 이젠 슬픔을 승화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고 권하고 싶다. 비탄에 머물지 않고 슬픔을 이웃과 나누는 대신 더 이상 같은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게 희생자들의 죽음을 더욱 값있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장된 수병들의 시신을 찾는 예를 다하지 않고, 선체도 인양하지 않았지만 애리조나호는 역사의 살아있는 일부로 남았다. 전쟁 대비에 소홀했던 미국에 경종을 울리고, 평화를 희구하는 세계인에게 교훈을 던지는 일은 세월을 뛰어넘어 계속되고 있다. 우리도 세월호 참사를 우리 역사의 새 이정표로 승화시킬 때가 됐다.

참사 슬픔 딛고 승화시켰으면

희생자들의 앳된 사진, 기울어가는 선실에서 찍었던 마지막 동영상을 대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게 어찌 가족들만의 일이겠는가. 국민 보호 의무를 다하는 국가, 이웃의 안전에 책임의식을 가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매의 눈초리가 희생자 유족들만의 몫이겠는가. 이제는 슬픔을 딛고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진도의 가족들은 심신을 갉아먹는 슬픔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처가 아물 여지와 기회를 남겨야 한다. 그것이 산자의 길이요, 희생자들이 원하는 바일 것이라고 믿는다.

김의구 정치국제센터장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