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자유를 지키려고 싸우고 있는데 제가 도우러 가지 않고 전쟁이 끝난 뒤 평화가 찾아왔을 때 선교사로 돌아가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는 일입니다.”
월리엄 해밀턴 쇼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모에게 이런 편지를 쓰고 미국 해군 대위로 자원입대했다. 하지만 채 3개월도 되지 않은 9월 22일 서울 은평구 녹번리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스물아홉 나이로 전사했다.
해군사관학교는 29일 교내에서 이기식 해군사관학교장, 리사 프란체티 주한 미 해군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쇼 대위 흉상 제막식(사진)을 가졌다. 앞서 은평구는 2010년 6월 은평평화공원을 만들고 추모 동상을 세웠다.
선교사로 한국에 와 있던 월리엄 얼 쇼 부부의 외아들로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쇼 대위는 일제가 그의 가족을 강제 추방한 1941년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해군 중위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으며 1947년부터 1년간 해사의 전신 ‘조선해안경비대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밟던 중 6·25전쟁 소식을 듣고 “한국은 나의 조국”이라며 전쟁터로 달려왔다. 한국 정부는 1956년 금성 충무무공훈장을, 미 정부는 은성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쇼 대위와 그의 부모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역에 안장돼 있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
“한국은 나의 조국” 6·25 전장서 산화 선교사의 아들, 쇼 대위 흉상 섰다
입력 2014-09-30 0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