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버전으로 재해석한 ‘1984’ vs 뉴욕 월가로 옮겨앉은 '파우스트'

입력 2014-09-30 04:02
이번 가을 관객들을 찾아가는 명작 소설 원작의 작품 뮤지컬 '더 데빌'에서 X역을 맡은 배우 마이클 리가 그레첸 역을 맡은 차지연을 안고 노래하고 있다. 알앤디웍스 제공
연극 '1984'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작 ‘1984’와 ‘파우스트’가 연극과 뮤지컬로 각각 재탄생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소설만큼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한 연극 ‘1984’와 강렬한 록 음악 사운드 위에 덧입혀진 뮤지컬 ‘더 데빌’이다.

◇지나간 1984년…현대 장치 곳곳 투영해 다가올 ‘1984년’을 그리다=영국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쓴 작품 ‘1984’는 당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가올 1984년이 감시사회로 전락하는 상황을 예측한 이 소설은 ‘빅 브라더’라 불리는 골든슈타인을 따르며 절대 복종을 맹세했던 윈스터와 줄리아가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다 처참하게 짓밟히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3일 막을 올린 연극 ‘1984’는 이 같은 원작의 내용을 철저히 반영했다. 정해진 규율에 복종하며 개인의 삶을 포기한 인간을 표현하고자 9명의 등장 배우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머리를 밀었다.

현대의 장치도 곳곳에 배치됐다. 첫 장면, 무대 위 TV 화면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등장한다거나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우승한 이선희의 ‘J에게’가 배경음악으로 수차례 반복되는 식이다.

140분간 쉬는 시간 없이 이어지는 촘촘한 대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빅 브라더는 누구인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조지 오웰이 작품을 만들었던 당시 하고 싶었던 말인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말이 연극을 관통하는 코드로 사용된다. 치욕스럽게 농락당하는 윈스터와 줄리아의 모습을 보다보면 극 내내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선 전라로 무대를 돌아다니거나 사람이 우리에 갇혀있는 모습도 거침없이 등장한다. 다음 달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전석 3만원(02-708-5001).

◇인간 본성 보여주는 대작…135분에 담기엔 무리였을까=독일의 대문호 괴테(1749∼1832)의 대표작인 ‘파우스트’는 구상에서 완성까지 무려 60년이나 걸린 대작이다. 신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선과 악을 대표하는 두 존재가 인간 파우스트를 상대로 내기를 벌이며 파멸에 이르게 하는 내용이다.

뮤지컬 ‘더 데빌’은 이 삼각 구도를 유지하며 배경을 미국 뉴욕 증권가로 옮겼다. 세속적이고 치열한 전쟁, 쾌락의 유혹이 결집된 곳 뉴욕에서 주식 브로커로 살고 있는 주인공 파우스트는 블랙먼데이, 자신이 투자했던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면서 괴로워한다. 이를 되살리고자 달콤하게 들려오는 악마와 계약을 맺는 파우스트는 일이 잘 풀리고 돈도 끝없이 벌어들이지만 사랑하는 연인 그레첸을 홀대하고 영혼은 피폐해져간다. 또 다른 등장인물 ‘X’는 원작에선 선과 악을 대표하는 두 존재를 하나로 결집시켜놓은 새로운 캐릭터. 흑백의 의상을 번갈아 바꿔 입고 등장하면서 인간을 이끄는 선과 유혹하는 악의 경계를 넘나든다.

‘헤드윅’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의 록 뮤지컬로 호평 받은 이지나가 연출을 맡았고 미국 영화계에서도 활약 중인 작곡가 우디 박과 뮤지컬 ‘대장금’ 등에 참여한 작곡가 이지혜가 공동 음악작업을 했다. 배우 한지상, 마이클 리, 송용진, 윤형렬, 김재범, 차지연 등 스타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

그럼에도 작품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린다. 주연 배우들의 가창력은 뛰어나지만 135분의 공연시간 내내 어두운 분위기가 가시지 않는 점은 아쉽다. 방대한 양을 축약하다보니 사건을 진행시키는 연결고리도 허술하다. ‘X’의 역할도 모호한 측면이 있는데다가 앙상블이 오히려 극 흐름을 방해한다는 지적이다. 11월 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5만∼8만원(1577-3363).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