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앞마당엔 짚단이 수십 개 쌓였다. 짚단 위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고 연인들이 도시락을 먹는 벤치가 됐다.
의미 없이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 이 짚단은 미술작품이다. 놀이를 기반으로 한 건축 구조물이라는 기능과 함께 ‘동그라미, 세모, 네모’라는 이름도 있었다.
이 짚단은 네임리스건축의 부부 건축가 나은중(36·오른쪽), 유소래(32·여)씨가 만들었다. 지난 20일 ‘2014 막계 페스티벌’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에게 작품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지난 8월 막계 페스티벌의 건축 플랫폼 설계를 위한 건축가로 선정된 뒤 문화와 교육을 접목한 놀이기반시설을 구상했다.
“사각형과 삼각형, 원은 기본 도형이며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단순 기하학을 예술적인 놀이 풍경의 매개체로 삼았습니다.”(나은중)
재료는 짚과 직물이었다. 짚은 환경친화적인 데다 적은 비용으로도 넓은 면적을 채울 수 있었다. 잔디 마당에 원과 삼각형, 사각형 모양으로 배치됐다. 짚단의 거친 윗면은 하얀 직물로 덮었다.
“막계 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은 2시간인데 사람들은 정작 잔디밭에서 더 오래 머문다는 데 착안했습니다.”(유소래)
두 사람이 국립현대미술관 잔디마당이라는 넓은 공간에 파빌리온(야외에 설치한 임시 건축물)을 설치 할 수 있었던 것은 최근 건축에 대한 세상의 달라진 시선 덕분이었다. 과거 건축가는 건물을 지었던 사람이었지만 최근엔 장소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들이 만든 파빌리온의 예술성을 눈여겨보는 사람도 늘었다.
“과거엔 갤러리를 지을 때나 전화를 했던 갤러리 분들이 이제는 전시하자고 전화를 합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나은중)
송도 등 신도시에서도 공원에 파빌리온을 설치하고 싶다는 문의 전화를 해왔다. 네임리스 외에도 젊은 건축가들은 다양한 파빌리온을 통해 건축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7월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현대미술관,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한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5-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에 선정된 문지방팀도 마찬가지였다. 박천강, 최장원, 권경민 등 30대 젊은 건축가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 문지방은 작품 ‘신선놀음’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 10월 6일까지 세워 둔다.
최씨는 “일부 미술관은 젊은 건축가들이 공간과 풍경을 만드는데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전했다.
과제는 건축가 내부의 비판을 이겨내는 것이다. 여전히 이들의 작업을 건축으로 보지 않는 부정적 시선이 많다. 80∼90년대 대표적 건축물을 만들어 한국의 근대건축 발전을 이끈 김종성은 “무작정 유행을 따라가는 것만 경계하면 된다”면서 “자기 철학을 담고 있다면 새로운 아이디어도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천=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아이들 놀이터·연인들의 벤치가 된 건축 작품
입력 2014-09-30 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