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을 하나밖에 없는 독립정당으로 두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합법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들이 별도의 정당을 만들 수 없다는 지령은 헌법에 위배된다.”
세계헌법재판회의 제3차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발레리 조르킨(71) 러시아 연방헌법재판소장은 2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조르킨 소장은 한국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인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관련 질문에 이같이 설명했다. 1991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단행했던 공산당 해체에 대한 러시아 헌재가 내렸던 결정을 예를 들었다. 러시아 헌재는 92년 옐친 대통령의 공산당 상부조직 해체는 합헌이지만 당 기초조직을 해체하고 공산주의 자체를 폐지한 것은 위헌이라는 부분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에 옐친 대통령이 93년 헌재를 임시 폐쇄하고 조르킨 소장을 사임시켰다. 그러나 같은 해 러시아연방의 새 헌법이 공포되면서 재판관으로 복직했다. 조르킨 소장은 이후 2003년부터 현재까지 소장직을 맡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조르킨 소장은 “이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정당 해산은 국민들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지키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고 각 나라 헌재의 세밀한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면서 “한국 헌재가 심리 중인 사안에 코멘트를 한다면 결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안니 부키키오 베니스위원장도 통진당 사건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베니스위원회가 채택한 ‘정당의 금지 및 해산·기타 유사한 조치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도 “보편적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지침일 뿐 구속력은 없다”며 “한국 헌재가 다른 나라의 사례 등을 참조해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 본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기자회견에 배석한 강일원 헌법재판관은 “위원회로부터 가이드라인을 비롯해 유럽과 터키의 선례 등 많은 자료를 제공받아 정당해산 심판의 참고자료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키키오 위원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이버상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인터넷 같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지나친 감시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규제를 위한 규정이나 법규도 중요하지만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더 중요한 가치로 봤다. 이탈리아 바리대 교수 출신인 부키키오 위원장은 2009년부터 베니스위원장을 맡고 있다. 베니스위원회의 정식명칭은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로 1990년 동유럽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설립됐다. 현재 유럽연합 47개국과 한국 등 비유럽 13개국이 회원이다.
정현수 기자
“러 공산주의자 정당 못 만들게 하는 건 위헌”“지나친 감시에 반대”
입력 2014-09-29 0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