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 문화재 숨겨두고 때를 기다린 박물관장

입력 2014-09-29 03:09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가 28일 서울 중랑구 광수대 브리핑실에서 사립박물관장 권모씨로부터 압수한 지석(誌石)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굴된 문화재 수백점을 사들여 숨겨놓고는 공소시효가 끝나기만 기다리던 사립박물관장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조선 중종(中宗)의 손자 풍산군 이종린의 분묘 등에서 도굴된 지석(誌石) 558점을 개인수장고에 숨겨온 서울의 한 사립박물관 관장 권모(73)씨와 이를 알선한 문화재 매매업자 조모(65) 김모(64)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무덤의 소재를 기록해 무덤 앞에 묻는 판석이다. 본관·이름·계보·행적·가족관계 등이 적혀 있다.

권씨가 은닉했던 지석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제작된 것으로 지석의 변천 과정과 매장자의 일대기, 조선의 시대상과 서체 등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종린의 분묘에서 발견된 지석 8점은 조선 왕실의 매장 풍습을 연구하는 데 높은 가치를 지녔다. 또 전의(全義) 이씨 이희옹(1472∼1541)은 조선시대 중종반정을 도운 공으로 정국공신 3등에 녹훈된 인물로 지석을 통해 처음으로 생년이 확인됐다.

권씨는 2003년 조씨와 김씨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3300만원에 사들인 지석 379점과 ‘성명불상자’에게 취득한 지석 179점 등 총 558점을 보관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타인 명의로 창고를 빌려 지석을 은닉한 뒤 장물 취득·알선죄의 공소시효(7년)가 만료되기를 기다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실제 조씨와 김씨의 경우 공소시효가 끝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키로 했다. 권씨는 문화재보호법상 은닉 혐의가 적용돼 처벌받게 됐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