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지호일] 형제의 난

입력 2014-09-29 03:20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자 조선 건국의 혁명 동지였던 이방원은 임금이 되려고 칼에 숱한 형제들의 피를 묻혔다. 그는 1398년(태조 7년) 8월 사병을 동원해 정도전, 남은 등 공신들은 물론 이복동생인 세자 방석과 방번까지 살해했다. 1400년(정종 2년) 1월에는 왕위를 노려 난을 일으킨 친형 방간을 제압해 죽을 때까지 귀양살이를 시켰다. 이방원은 한 아버지를 뒀지만 정적(政敵)이기도 했던 형제들을 제거한 뒤 유약한 둘째 형 정종으로부터 용포(龍袍)를 물려받아 태종이 됐다. 왕실에서 벌어진 이 골육상쟁은 ‘왕자의 난’으로 불린다.

왕위계승 문제가 사라진 현 시대에 와서는 기업 지배권이나 유산을 둘러싼 재벌가(家) 형제들의 다툼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40대 재벌 중 17곳이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는 통계도 있다. 칼로 직접 형제들을 베는 대신 검찰이란 ‘칼’을 빌려 상대를 치려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 속성은 과거와 비슷한 듯하다.

두산그룹은 2005년 박용오 전 회장이 동생 박용성 전 회장의 그룹 회장 추대에 반발하면서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박용오 전 회장은 일가의 비자금 내역이 담긴 문건을 통째로 검찰에 가져다 줬다. 4개월간의 수사 끝에 박용오·용성 형제는 모두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다. 가문에서 제명된 박용오 전 회장은 얼마 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은 지난 7월 형과 동생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 2곳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미 8000억원대 경영 비리 혐의로 재판 중인 아버지 조 회장으로서는 두 아들마저 검찰 조사를 받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검찰은 최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4000억원대 배임 혐의로 고소한 사건도 걸려 있다. 유죄로 인정되면 최하 징역 5년형이 선고되는 죄목임에도 동생 측이 ‘신속·엄정 수사’까지 촉구한 것을 보면 가히 남보다도 못한 사이인 셈이다. 이번 비자금 의혹 역시 형제 간 반목과 갈등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재벌이라고 해서 가족 구성원끼리 싸우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싸움이 집 밖으로까지 표출돼 기업을 흔들고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면 그건 해악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재벌 형제가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고 비리를 들춰 검찰 수사에까지 이른 경우 어느 쪽이든 ‘해피 엔딩’은 드물었다.

지호일 차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