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장애우 일터 ‘조스테이블’ 설립한 캐나다 이성자 권사

입력 2014-09-29 03:32
캐나다 교포사업가 정문현 이성자씨 부부가 최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극동방송 신사옥에 있는 ‘조스테이블’ 커피전문점에서 발달장애 종업원을 격려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자(59·캐나다 밴쿠버 그레이스한인교회) 권사. 캐나다 최대 교육그룹 PCV를 설립한 정문현 회장의 부인인 그는 서울대 음대와 미국 남가주대 대학원 졸업, 밴쿠버 시온선교합창단 상임지휘자, 국제구호단체 GAiN 명예대사 등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부족할 게 없어 보이지만 그의 삶에도 질곡은 있었다. 1980년 6월 23일 축복 속에 태어난 첫째 아들 조셉(한국명 홍렬)이 자폐와 간질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울부짖으며 “하필이면 왜 저입니까? 왜 우리 가정에 이 아이가 태어났나요?”라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임신했을 때 조셉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게 해달라는 서원기도를 드렸기에 원망은 더 컸다.

사랑하는 아들이었지만 조셉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는 전쟁과 같았다. 조셉은 길을 가다 아무 아이나 때리곤 했다. 밥 먹는 것, 대소변 가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조셉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갈 수도, 음식점에 갈 수도 없었다. 점점 조셉을 방안에 숨긴 채 사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전도사로부터 위로의 말을 들었는데 마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았다.

“어머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시련과 고통을 다 보고 계십니다. 이 시련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입니다.”

특히 ‘혼자가 아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전도사와 함께 기도하면서 가슴속 응어리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모처럼 느끼는 평안이었다.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다른 사람의 이목보다 주님을 먼저 생각했다.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을 다른 이들에게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무너지는 제게 천사를 급히 보내셨던 게 틀림없습니다. 한동안 중단했던 피아노 건반을 다시 두드릴 수 있게 됐고 하나님을 기쁜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2003년 10월에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안식처인 ‘베데스다 어머니회’를 설립했다. 어머니들은 만날 때마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면서 겪는 아픔들을 나눴고 힘을 모아 봉사활동에 나섰다.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여 믿음을 갖게 된 가정이 늘어났다.

“베데스다 어머니회에선 자식을 자랑하는 다른 세상적인 모임들과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집니다. 누가 힘든 이야기를 하면 다른 엄마가 ‘그런데 우리 아이는 그것보다 더 심해요. 우리 아이는 이런 상태예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엄마가 이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됩니다. 함께 이야기하던 다른 엄마들은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를 하지요.”

안정을 되찾을 무렵, 그는 또 한 차례 큰 시련을 겪었다. 2012년 조셉이 수영을 하다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을 잃더니 세상을 떠난 것이다. 큰 슬픔 속에서도 그는 순진한 조셉의 영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고 기도했다. 그러자 '세상의 모든 장애 아이들을 아들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이 권사는 장애 아이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는 '조스테이블'(Joe's table) 사역을 시작했다. 조스테이블의 고용원칙은 발달장애인과 일반인을 직원으로 함께 고용해 서로 도우며 협력하게 하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밴쿠버에 1호점을 연 조스테이블은 같은 해 10월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극동방송 신사옥에 2호점. 지난 6월 21일 서울 반포대로 사랑의교회에 3호점을 열었다.

이 권사는 조스테이블에 담긴 조셉의 꿈과 하나님의 손길을 엮은 '너는 하나님의 메시지란다'(규장)라는 책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조셉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 준 아이였다"며 "32년 동안 조셉을 키우지 않았다면 몰랐을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메시지를 그 아이를 통해 비로소 받게 됐다"고 간증했다.

이 권사는 지난 3월 캐나다 장애인 지원단체인 CLBC가 장애인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와이드닝 아워 월드'(WOW)상을 받았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