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 김현섭-전영은, 척박한 한국 육상에 희망 선사하다

입력 2014-09-29 03:20
김현섭이 28일 인천 연수구 송도센트럴파크에서 열린 남자 경보 20㎞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3개 대회 연속 메달 획득이다. 연합뉴스
경보 여자 20㎞ 경기에 출전한 전영은이 경기 도중 물을 마시며 체력을 보충하고 있다. 전영은은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한국 여자 경보 사상 첫 아시안게임 메달을 따냈다. 연합뉴스
힘겨운 20㎞ 레이스를 홀로 묵묵히 걸어야 하는 경보. 한국 남녀 경보 에이스 김현섭(29·국군체육부대)과 전영은(29·부천시청)이 값진 메달을 따내며 척박한 한국 육상에 한줄기 희망을 선사했다.

김현섭은 28일 인천 연수구 송도센트럴파크에서 열린 남자 경보 20㎞에서 1시간21분37초로 결승선을 통과해 동메달을 따냈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 은메달,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인 그는 세 번째 아시안게임에서도 메달을 목에 걸었다. 역대 한국 육상 선수 중 남자 높이뛰기 이진택(1994 히로시마 은, 1998 방콕 금, 2002 부산 금)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안게임 3개 대회 연속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김현섭은 비인기 종목인 한국 육상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두 발 중 한 발은 땅에 딛고 걸어야 하는 힘겨운 20㎞ 레이스를 소화하며 묵묵히 한국 육상을 지킨 선수다. 실제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 경보에서 1시간21분17초로 6위에 오르며 한국 경보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10위 안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또 지난해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10위를 차지했다.

김현섭은 인천에서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결국 금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그래도 메이저대회인 아시안게임에서 3차례 참가해 모두 메달을 얻은 건 정말 기쁜 일”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국군체육부대 소속인 김현섭은 특히 전역을 앞두고 메달을 획득해 감회가 더욱 남달랐다. 김현섭은 “내달 6일에 전역하는데 군 생활 마지막 대회에서 메달을 따내 더 의미가 있다”며 “운동을 하다 보니 다른 병사들보다 군 복무에 집중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메달로 죄송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김현섭은 자신의 메달로 경보가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경보 선수가 뛸 수 있는 국내 실업팀은 두 곳뿐”이라며 “경보는 엄격한 규정이 있는 종목이라 지도자와 함께 훈련하는 게 중요한데 경보 선수가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여자 경보에선 한국 여자 경보 사상 첫 아시안게임 메달이 나왔다. 전영은은 여자 경보 20㎞ 경기에서 1시간33분18초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영은은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경기 막판 역전극을 펼친 끝에 3위로 골인했다.

전영은도 외롭고 힘든 훈련을 이겨내고 값진 메달을 얻었다. 성인 선수가 6∼8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한국 여자 경보에서 전영은은 감독과 소속팀 후배 3명이서 일주일에 50∼60㎞씩 도로를 걷는 훈련을 반복했다.

전영은은 “워낙 열악한 환경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런 외로움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훈련을 견디고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겸손해 했다.

인천=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