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역정보 루트는 사라졌을까

입력 2014-09-29 03:30

현재 중국은 마지성(馬繼生) 주아이슬란드 중국대사를 간첩죄 혐의로 체포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는 2004∼2008년 주일 중국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할 당시 일본에 포섭돼 각종 고급 정보를 흘려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 7월 체포된 중국 국영 CCTV의 앵커 루이청강(芮成鋼)도 중국 고위층 관련 자료를 미국 언론에 넘기는 등 간첩 혐의로 구금 중이다.

중국은 4년 전에 외교부 대외연락부에서 한반도 담당처장을 지낸 장류청(張留成)을 역시 간첩 혐의로 사형시켰다. 2005년과 2006년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통역을 맡았던 그는 회담 내용을 주변국에 흘렸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은 2006년에는 김 국방위원장의 방중 정보를 한국에 흘린 혐의로 리빈(李濱) 전 주한 중국대사를 체포하고 당적을 박탈했다. 중국은 최근 중국 내 싱크탱크 내 구성원들의 간첩 혐의를 조사하고 나서는 등 국가 기밀 누출 방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독일 역시 지난 7월 2일 미 중앙정보국(CIA)에 기밀문서를 넘긴 혐의로 자국 연방정보국(BND) 소속 공무원을 체포한 바 있다. 독일은 같은 달 9일에도 국방부 소속 인사가 미국을 위한 스파이 활동을 해왔다고 보고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이다.

미국도 지난 7월 한국계 핵 전문가인 스티븐 김 박사가 미 폭스뉴스에 북한 핵 관련 정보를 누설했다는 혐의를 확정짓고 징역 13개월형을 선고했다. 1996년에는 미 해군 정보국 소속 로버트 김을 기밀 유출로 체포해 9년형을 선고한 바 있다. 미국은 2010년에는 ‘미녀 스파이’ 안나 채프먼 등 모두 11명의 러시아인들이 외교가와 금융가의 고위 인사들을 만나 정보를 캐낸 혐의로 한꺼번에 잡아들였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금도 상대국의 첩보 행위를 저지하는 ‘반탐(反探)’ 활동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기밀을 외국에 넘기거나 이를 캐내려 한 외국 스파이를 발각해냈다는 소식을 도통 접할 수 없다. 국가정보원이 북한 관련 간첩 혐의나 산업스파이를 색출해내는 일은 벌여왔지만 정작 국가 안위를 중대하게 해칠 수 있는 기밀 누설을 막아내는 일에 있어선 활동이 미미해 보인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그런 행위가 없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대외관계 일을 다루는 부처 주변에서는 심심찮게 “우리 쪽 고위 인사의 비공개 발언이 주변국에 흘러들어가는 것 같다”거나 “특정국의 입장에 경도된 목소리가 (정부 관계자들에) 압박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얘기가 들린다. 특히 올해 들어 동북아 각국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외교전을 펼치면서 각국의 정보전이 이전보다 한층 가열된 상황이다. 참여정부 시절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독도 주변의 일본 순시선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역정보(逆情報)’를 흘려 일본이 도발하지 못하도록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역정보가 흘러들어갈 수 있는 루트가 있다는 것 자체에 크게 우려했다고 한다. 그런 ‘루트’들이 지금 다 사라졌다면 다행이지만, 과연 그러할까.

경쟁국을 상대로 한 정보전은 또 다른 외교전이다. 좋은 정보가 기업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거나 리스크를 피해갈 수 있게 해주듯 국가에는 ‘이기는 외교’를 가능하게 해준다. 반대로 우리 쪽의 중요한 움직임이나 내부방침 등이 누설되면 외교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새 정보를 얻는 것 못지않게 고급 정보 누설을 막는 방첩 활동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특히 우방국들에 대해 더욱 그러하다.

손병호 외교안보국제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