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생을 전후로 직장인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법 개정으로 종업원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2016년 1월부터, 300인 미만 중소기업과 지자체의 모든 사업장은 2017년 1월부터 정년 60세가 의무화됨에 따라 생겨난 풍속도다.
직장인의 88%가 중소기업 종업원이라서 정년 60세가 본격화되는 시기는 사실상 2017년부터다. 퇴직 연령을 55세로 가정하면 59년생은 올해, 60·61년생은 각각 내년·내후년에 정년을 맞는다. 불과 몇 년 차로 60세 정년 혜택을 못 누린다. 직장인들의 골품이 달라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정년한 사람은 차라리 덜 아쉽겠지만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 59∼61년생들로서야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얼마 전 정년이 55세인 한 기업의 노조 임원을 만난 자리에서 59∼61년생 조합원을 위한 대책은 있느냐고 넌지시 물어봤다. 대답은 ‘노’였다.
정년 60세 의무화는 분명 고령화 대비책의 일환으로 환영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정년연장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불쑥 법안만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법 개정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의 무능과 무책임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4월부터 정년 65세 의무화 법안이 완전히 가동됐는데 이를 위한 준비기간과 단계적 시행 과정을 더하면 십수년은 족히 걸렸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거나 다양한 근무형태가 가동될 수 있는 근로환경 개선이 따라주지 않으면 정년 60세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 정년을 늘리는 대신 연공급 체계를 개선해 기업의 임금 부담을 줄이는 노사 상생의 틀을 마련할 수도 있겠으나 노조 임원의 대답처럼 62년 이후 출생한 근로자들은 임금피크제와 같은 새로운 체제 도입을 반대하는 듯하다.
이대로 가만있어도 정년 60세까지 임금은 매년 늘 텐데 굳이 임금피크제니 뭐니 등으로 골머리를 썩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일까. 하지만 그것은 단견이다. 당장 그들 자신에게는 이익이 될지언정 한국경제의 생태계는 시나브로 지속 가능성을 잃게 될 것이고 그 여파는 결국 자식세대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해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독일의 ‘어젠다 2010’(일명 하르츠 개혁)이 좋은 사례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독일은 유럽의 병자라고 불릴 만큼 저성장과 고실업률에 허덕였지만 사회적으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합의가 도출되면서 놀랄 만큼의 성과를 냈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고용률이 늘고 실업률이 줄어든 나라는 유럽에서 독일을 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하르츠 개혁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었다. 예컨대 안드레아스 뇔케 프랑크푸르트대학 교수에 따르면 고용 기적이 일어난 독일에서 총근로시간은 1991년 약 600.8억 시간에서 2012년 579.7억 시간으로 줄었다. 고용률이 늘었음에도 총근로시간이 줄었다면 원인은 근로자들이 생산성 향상으로 임금 수준이 높아져 근로시간을 줄였거나 단시간 근로가 늘었거나 둘 중 하나다. 같은 기간 특별히 독일의 임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늘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정답은 단시간 근로가 많아진 데 있다.
‘어젠다 2010’의 이면엔 파트타임과 같은 단시간 근로를 양산하면서 일자리를 늘리고 구성원들도 고용 기회를 함께 나누는 협력의 공감대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두고 독일의 고용 기적은 허울뿐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독일 국민이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여전히 그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요즘 곳곳에서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고용 기회를 나눌 것인지, 적은 임금의 단시간 일자리를 감내할 것인지 우리의 선택은 뭔가. 문제는 한국은 독일과 달리 사회보장 체계가 미흡한 만큼 복지 수준을 높여야만 저임금·단시간 근로자들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복지 체계를 서둘러 갖추자면 보편적 증세는 불가피하다. 정부와 경제주체들의 선택에 미래가 달렸다. 고용과 복지는 바로 우리의 삶이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59∼61년생은 바로 우리의 문제
입력 2014-09-29 0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