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은 26일 여당 의원들만 참석한 국회 본회의 개의를 강행했다. 그러나 정 의장은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는 새누리당 기대와 달리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로 여야 합의를 강조하는 호소문 형식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결론은 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법안 처리를 연기하고 30일 다시 본회의를 개의하겠다는 것이었다. 허를 찔린 새누리당은 거세게 반발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 의장은 법안 처리를 30일로 미룬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국정감사 계획서가 어느 상임위에서도 채택되지 못한 점을 들었다. 그는 "국감 계획서를 채택하지 않으면 상임위는 물론 수감기관인 정부 각 기관이 아무 일정을 잡을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진다"며 "따라서 오늘(26일) 계류 중인 안건을 의결한다 해도 수일 내 또 본회의를 열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정치연합의 연기 요청을 거론하며 "어차피 본회의를 한 번 더 소집해야 하는 상황에서 야당 요청의 진정성을 믿고 의사일정을 변경하려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여야에 세월호 특별법 최종 합의를 촉구했다.
정 의장은 다음 본회의 일정을 30일로 못 박았다. 남은 4일간 여야가 세월호법과 국회 정상화에 대한 협상을 마무리하라는 것이다. 정 의장은 "30일 본회의는 어떤 경우에도 소집해 부의된 모든 안건을 처리할 것"이라며 "(의사일정 변경에 대한) 비난은 제가 감당하고 가겠다"고 했다. 정 의장은 30일 본회의에서 법안 처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의회민주주의에 조종(弔鐘)을 울렸다"(박대출 대변인)며 거세게 반발했다. 당장 이완구 원내대표는 본회의 산회 직후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가 이를 즉각 반려해 실제 사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다.
정 의장이 오후 2시50분쯤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 박수가 나왔다. 본회의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등 입각한 의원들도 참석했다. 그러나 법안 처리 기대감은 단 9분 만에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다.
정 의장이 호소문 낭독 후 산회를 선포하자 본회의석에서 "지금 뭐하는 거냐" "약속 지켜라"는 여당 의원들의 항의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의원들끼리 모인 자리에선 "의장이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긴급의총 분위기도 격앙돼 있었다. 조해진 의원은 "발언 끝나자마자 의원들에게 말할 기회도 안 주고 방망이 두들겨 산회를 선포하는 게 국회의장이 할 일이냐"면서 "오늘부터는 의장도 국회 마비의 중대한 책임자가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안도했다. 김영근 대변인은 "국회의장이 중심을 잡고 국회선진화법에 반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일단의 의지를 표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새누리당은 30일 본회의 소집이 예정된 만큼 세월호 특별법 협의에 진정성을 갖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30일까지 세월호법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새누리당의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막 가자는 것이냐, 세월호를 포기하자는 것이냐. 그렇게 하면 이판사판이 된다"며 "공당인데 여당으로서 책임 있게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임성수 권지혜 기자 joylss@kmib.co.kr
[‘9분 본회의’] 허 찔린 與 거센 반발… “약속 지켜라” 격앙
입력 2014-09-27 0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