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 한국 ‘최고령 金’ 전재식 “이 메달 김형칠 선배께…” 울먹

입력 2014-09-27 03:33 수정 2014-09-27 15:20
인천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한 홍원재 방시레 전재식 송상욱(왼쪽부터)이 26일 인천 드림파크승마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인천=이병주 기자
한국 선수단의 최고령 선수인 전재식(47)이 26일 후배들의 도움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재식은 송상욱(41) 방시레(26) 홍원재(21)와 함께 전날부터 이틀간 펼쳐진 승마 종합마술 단체전에 출전했다. 마장마술, 크로스컨트리, 장애물비월로 구성된 종합마술 단체전은 나라별 출전 선수 4명 가운데 상위 3명의 점수를 합산해 메달 색깔을 가린다. 감점이 적을수록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첫날 마장마술을 전체 5위로 마치며 선전했던 전재식은 이날 유난히 부진해 63.10의 감점을 받았다. 하지만 합산 결과 27명의 참가자 가운데 가장 적은 37.90감점으로 개인전 금메달까지 차지한 송상욱을 비롯해 방시레(3위·41.30감점) 홍원재(11위·53.80감점)가 선전한 덕분에 이번 대회 한국의 최고령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47세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된 전재식은 승마계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현재 승마 국가대표팀의 맏형이자 한국마사회의 코치를 겸하고 있는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경기도승마협회의 올림픽 꿈나무로 뽑힌 것을 계기로 승마를 시작했다. 평범한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귀족 스포츠’인 승마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았지만 승마에 대한 열정이 그를 붙잡았다.

그는 19세에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유독 아시안게임과는 인연이 없었다. 1986 서울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는 종합마술 예선 4차전까지 1등을 차지했으나 5차전에서 마체검사(말의 상태를 검사하는 것)를 통과하지 못해 실격됐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순위 밖에 있던 선수가 뽑혔는데, 당시 ‘보이지 않는 손’의 압력으로 그가 탈락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불운은 계속됐다. 그는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선 승마가 정식 종목에서 빠지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고 19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선 일본이 검역을 이유로 대여마(貸與馬)로 경기를 치르기로 함에 따라 선수들이 보이콧을 결의해 출전하지 못했다. 이어 1998 방콕아시안게임 때는 4명을 뽑는 장애물 대표 선발전에서 4위를 하고도 최종명단에서 빠졌다.

지방에서 승마교관을 하는 등 절치부심 끝에 그는 2006 도하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됐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 선배인 김형칠 선수가 종합마술 경기 도중 낙마사고로 숨지자 그와 후배들은 남은 경기 출전을 모두 포기했다. 그리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첫 은메달을 따낸 데 이어 마침내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시상대 맨 윗자리에 올라섰다.

그는 “너무나 벅차서 말이 잘 안 나온다. 오늘 많은 관중 분들이 찾아와서 뜻밖에 많은 박수를 받았다”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플래시 세례도 받았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언제 또 이런 순간을 누릴지 모르겠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는 고(故) 김형칠 선수를 떠올렸다. “그동안 함께 승마를 하다가 운명을 달리한 김형칠 선배에게…”라고 말을 꺼낸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대회에 나설 때마다 항상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 끝나고 김형칠 선배 묘에 가서 자랑해야겠다”며 눈물 섞인 미소를 지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이제 새로운 꿈이 생겼다. 그는 “내일모레면 50세지만 체력관리를 잘해서 오랫동안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 대표팀에서 항상 최고령 선수로 남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어 “승마는 전성기가 늦게 찾아오는 종목이기에 아직 올림픽을 꿈꾼다. 적절한 지원만 이뤄진다면 올림픽 메달에도 도전하고 싶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인천=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