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교남소망의집 황규인 원장 “발달장애인 자립 위해 청춘을 바쳤어요”

입력 2014-09-29 03:22
중증 발달장애인 돌봄 시설 교남소망의집 황규인 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강서구 까치산로 교남소망의집에서 자신의 소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허란 인턴기자

여장부일 거라고 생각했다. 중증장애인으로 분류되는 발달장애인 수십명과 32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이니 으레 그럴 것이라고 떠올렸다. 통념이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26일 서울 강서구 까치산로 교남소망의집에서 만난 황규인(54) 원장은 160㎝가 채 되지 않는 작고 유약한 체구를 지녔다. 다만 그의 신념과 믿음은 누구보다 분명했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제가 여기 있지 못했을 거예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이것저것 따졌다면 금세 그만뒀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제가 장애인을 돌보고 헌신하기보다는 이 일을 통해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황 원장은 인터뷰 내내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은 하나님과 교남소망의집 직원 그리고 수많은 자원봉사자의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32년의 봉사를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과가 대단한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제가 한 것도 없이 이렇게 온 것 같아 조금은 민망하다는 생각이에요. 그저 발달장애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줄 수 없을까 생각했을 뿐이에요.”

겸손과 달리 황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인을 도와온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그룹홈’은 그를 상징하는 성과다. 그룹홈은 소규모 시설에서 발달장애인 3∼4명이 함께 살며 자립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황 원장은 1998년 발달장애인도 충분히 일상생활이 가능할 수 있다고 판단, 그룹홈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살 전세방을 구하는 것도 벅찼다. 집주인들은 발달장애인들을 보면 눈살부터 찌푸렸다. 황 원장은 그들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간신히 가구와 집기를 채워 2000년에야 교남소망의집 인근에 1호 그룹홈을 열었다. 여기에 발달장애인 4명이 둥지를 틀었다. 결과는 황 원장의 예상대로였다. 장애인시설에서의 단체생활에 신물이 난 발달장애인들은 그룹홈에 강한 애착을 가졌다. 스스로 생활하는 데도 큰 문제가 없었다. 성공적인 자립이었다.

황 원장은 발달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수를 세는 것조차 불가능한 이들도 토마토 오이 감자 등을 기르는 건 가능하다고 봤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교남어유지동산’은 이런 목적 아래 조성된 곳이다. 현재 40여명의 발달장애인들은 이곳에서 직접 농산물을 재배하고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판매까지 한다.

2010년에는 ‘조기노화장애인’을 위한 특수시설을 열었다. 조기노화장애인은 20∼30대에 급격한 노화를 맞는 장애인들을 일컫는다. 2010년만 해도 우리 사회에 조기노화장애인에 대한 개념 정립도 되지 않을 때였지만 황 원장은 이들을 지원해야할 필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조기노화장애인들이 일반적인 노인보호시설이 아니라 별도로 보호받아야 제대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황 원장의 노력 덕분에 현재 이 단어는 보건복지부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식 사용하게 됐다.

20대 이후 모든 삶을 발달장애인에게 바친 황 원장이지만 사실 그의 꿈은 유치원 교사였다. 실제 교남소망의집으로 오기 직전까지 유치원 교사로 일했다.

“1982년 제가 다니던 람원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권사님이 교남소망의집 초대원장으로 오셨어요. 그분이 함께하자고 한 게 이렇게 됐죠. 너무 힘들어서 사표 낸 적도 세 번이나 돼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조금만 더 도와 달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30년 넘게 발달장애인만 바라보며 살아온 황 원장의 남은 소망은 무엇일까. 그는 그저 “하나님의 계획을 조금이라도 더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엄청난 부탁이자 강경한 교훈이에요.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일은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마땅한 도리’고요. 이 마땅한 도리를 제가 얼마나 더 할 수 있느냐가 남은 과제겠네요(웃음).”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