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영화는 코흘리개 애들이나 보는 유치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허무맹랑한 영화가 되지 않도록 만들려면 정교한 이야기 구조도 필요하고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경이로운 배경과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의 머리를 울리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도 있어야 한다. 무엇인가를 상상하는 일이 쉬워 보여도 현실이라는 이름의 중력은 우리의 생각이 새로운 세계로 날아가지 못하도록 상상의 날개를 자꾸만 끌어당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눈앞의 현실에 매몰될 뿐 자신과 세상을 넘어서는 상상의 여유로움을 누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젊은이의 정신세계를 갖고 싶다면 판타지 영화를 챙겨 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판타지가 미덥지 않다면 톨킨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에게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로 알려진 J R R 톨킨은 판타지의 기독교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판타지란 가장 높고 순수한 형태며 예술과 신학과 인간의 기본 욕망이 만나고 교차하는 장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개의 판타지가 초월적인 세계를 그리는가 하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는 까닭에 그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10대와 20대 초반 청년들이 주로 소비하는 ‘영 어덜트(Young-Adult)’ 문학의 대표 작가 제임스 대시너의 인기 소설을 영화로 만든 ‘메이즈 러너(The Maze Runner)’는 우리 시대의 주목할 만한 판타지다. 영화는 과거의 기억이 지워진 상태로 영문도 모른 채 거대한 미로의 한가운데 고립되어 살아가는 한 무리 소년들의 탈출기를 그리고 있다. 종국에 가서 주인공 일행은 미로를 벗어나는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긴장감을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실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깨달음을 제공함으로써 판타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
첫째, 어느 사회나 목적을 상실한 규칙은 율법주의로 흐를 수 있음을 영화는 비판적 시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이자 공동체의 신참인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는 미로의 지도를 그리는 역할을 맡은 ‘러너’가 부상당하는 바람에 동료들 눈앞에서 미로에 갇히게 될 위기에 처하자 미로 속으로 뛰어들어가 함께 밤을 새우며 공포의 대상인 괴물 한 마리를 해치우게 된다. 이를 통해 토마스는 미로를 벗어날 수 있는 결정적인 전리품을 획득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하고, 서로를 해치지 말며, 미로 너머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는 그들의 사회규칙을 어긴 일이었고, 토마스는 벌을 받아야 했다. 미로 속에 갇힌 소년들의 최종 목적은 미로를 탈출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 공동체의 규칙을 만들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어느새 규칙의 목적은 잊혀져 갔고 오직 규칙을 지키는 일만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는 목적을 망각한 규칙(율법)은 저주가 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갈 3:10∼14)
둘째, 판타지가 우리에게 주는 모험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스위스 출신의 기독교 정신의학자인 폴 투르니에는 인간에게는 ‘모험’과 ‘안정’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본능이 있음을 지적하며, 세상 속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하루하루가 모험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임을 말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위험을 피하여 안전을 추구하고 급변하는 환경에 있기보다 예측 가능한 안정성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특히 영화에서처럼 거대한 미로와 괴물이라는 부조리한 상황이 펼쳐질 때 사람들은 적당히 타협하며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짙다. 이는 출애굽 당시 안정적이었던 애굽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모세를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출16:2∼3)이나 급변하는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익숙한 예배당 안에만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현실과도 닮았다.
인간은 안정에 대한 욕구를 넘어서서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생활에 지루해 하고 모험을 통해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심리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 어쩌면 투르니에의 저서명이기도 한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경은 우리를 일컬어 ‘거류민 혹은 나그네’(벧전2:11)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우리의 목적지인 천국을 향해 모험을 떠나는 여행길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투르니에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모험이다.”
강진구(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교수, 영화평론가)
[강진구의 영화산책] 모험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입력 2014-09-27 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