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리 총수 무관용’ 원칙 깨나

입력 2014-09-26 04:55 수정 2014-09-26 10:43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구속된 기업인의 사면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임환수 국세청장도 기업 세무조사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25일 “임 청장이 오는 29일 전국 세무관서장회의를 열어 무리한 기업 세무조사를 하지 말라는 식의 의견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은 지난 5월 올해 세무조사를 예전보다 줄이고 조사기간도 최대 30% 단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앞으로 경기가 나아질 때까지 기업 세무조사 강도는 한층 약화될 전망이다. 최근 세수 부족으로 나라 곳간이 텅텅 비어가자 기업을 살려 경제 활성화를 이끌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인의 가석방과 사면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황 장관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기업인들이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원칙에 어긋나서 엄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장관은 지난 24일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 살리기에 도움을 준 기업인은 가석방 또는 사면할 수 있다”고 밝혀 정부가 기업인 석방을 위한 군불때기에 나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황 장관 발언에 이어 경제·세무 당국 수장까지 이에 동조하면서 현 정부가 기업인 무관용 원칙을 사실상 거둬들인 것으로 관측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비리나 부정에 휘말린 재벌 총수 등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제한하겠다며 비리 총수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1절과 광복절 때 비리에 연루된 기업인에 대한 특별사면권을 일절 행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연대 경제정의연구소 팀장은 “국민 정서에도 반하고 향후 재판 과정에서도 이러한 점들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최 부총리는 이와 함께 한국의 경제체력이 회복됐다는 확신이 들면 구조개혁에 방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의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돼야 수술을 할 수 있다”며 “초반에 체력을 회복하도록 한 것이고, 본질적으로 경제 잠재력을 높이려면 구조개혁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돈만 풀고 구조개혁을 안 한다고 하는데, 난 구조개혁론자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라며 “경제 심리가 축소되는 분위기에서는 백약이 무효라고 보기 때문에 초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이용상 기자, 김재중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