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우리를 반기는 건 감기다. 감기는 우리에게 “가을 맞으러 오셨군요. 잘 오셨어요”라고 인사하는 것 같다. 계절적으로는 가을, 겨울에 우울증 발병이 높다. 해가 덜 드는 나라에서 우울증이 높은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 몸에서 낙엽이 떨어지진 않지만 우리 몸도 나무와 비슷한 채비를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런 중간 상태는 이전의 균형과 이후의 균형 상태에 비해 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나 보다.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딤후 4:21) 이 구절을 포함한 주변 성경 본문을 두고 설교를 한다면 어떤 제목을 붙이면 좋을까? 내가 보았던 제목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가을 편지’였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을에 보낸 편지라고 생각하면 운치 있지 않은가? 이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든 가을의 정취가 담겨 있음을 발견하면 마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마음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입장을 느끼게 된다. 바울만 해도 가을 편지의 심정이 어떠한가? 디모데에게 다급히 어서 오라고 한다. 그의 편지에는 자기를 떠난 사람들과 남아 있는 사람, 해를 입힌 사람, 그리운 사람들이 나열되어 있다. 바울의 험난한 심정을 고려하면 그의 가을은 운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환절기인 가을 초입은 이중적이다. 애잔한 그리움만 아니라 잊혀진 아픔의 기억을 되돌려 놓는다. 가슴 따뜻한 홀로 있음만 아니라 가슴 시린 외로움도 안겨준다. 어쩌면 가을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두 큰 인생의 흐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떠밀리는 심사를 보이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은 많은 것을 반복한다. 심리학자 레빈슨은 중년의 시기를 인생의 가을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인생이 상승 곡선에서 하강 곡선으로 방향전환을 이루는 시기임을 상징하는, 다소 부정적인 특성을 부각하는 표현이다. 아직 중년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은 가을을 경험하며 자기 미래의 중년의 위기를 미리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중년 이상인 사람들은 무수하게 가을을 반복하면서도 해결되지 못한 채 가을이 올 때마다 경험하는 마음의 열병을 점검해보면 좋겠다. 매사 변화의 연속인 인생이지만 아주 인상적인 몇몇 변화들이 우리 기억에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중 부정적인 변화라고 칭하는 변화들을 하나하나 회상해보자. 각각은 나름의 상황과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한꺼번에 큰 틀에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융합되어 어떤 막연한 특성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계절적으로는 가을에 가장 가깝고 인생의 시기로는 중년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부정적인 변화는 부정적인 최종 결과물을 연상시킨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밤에 좀 더 무서워하는 편인데 그것은 불안의 특성과 밤의 특성이 비슷해 상승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불안의 심연을 파고들면 가장 극단의 부정적인 결과를 가정하고 그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결과의 대표가 바로 죽음이다. 불안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약화된 형태라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다.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근원적인 면을 고려하고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적당히 직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안에 놓인 사람들에게 무조건 안심시키기를 시도하기보다 불안의 보다 실질적인 원인을 고려하고 그것을 회피하기보다 좀 더 직면하여 생각해보도록 권유한다.
지난 6월 이 코너에 처음 썼던 글이 한 장로님의 갑작스러운 암 판정 내용이었는데 지난주에 장로님이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 너무나 일찍 떠나셔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얼하다. 왜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 일찍 데려가시는가. 하나님은 참 가을 같으신 분이다.
최의헌(연세로뎀정신과의원)
[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환절기
입력 2014-09-27 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