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6시30분 서울 합정동 양화진책방에 세 기독청년이 시간 차이를 두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설 때마다 책방 조명의 룩스가 밝아지는 듯했다. ‘청년의 때’(전 12:1)였다. 그들은 각기 섬기던 교회에서 예배와 봉사를 마친 후 잰걸음을 했다. 양화진책방 뒤로 50m쯤 가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다.
그들은 이날 ‘예수의 좋은 병사’ 시절을 얘기하고자 했다. 선량한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며 국가의 안녕과 질서 그리고 번영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고 국가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것이 기독청년의 자세라고 배운 그들이었다.
그 전역한 세 청년은 유광재(26·서울 아현성결교회) 이재호(26·서울 풍납동 새순교회) 이수빈(22·인천 계산감리교회) 씨다.
주적이 분명하고 국방의 의무가 있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청년에게 군 복무는 신성하다. 하지만 유난히 군 관련 사고가 많았던 올해였다. 자녀를 현역병으로 보낸 부모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게 유난한 사고가 물질적으로 모자람이 없이 자란 ‘88올림픽 이후 세대’의 나약함 때문인지, 세대가 달라졌음에도 병역 제도를 개선시키지 못한 ‘군의 리더십’ 탓인지를 ‘기독청년 병사’들의 경험을 통해 들어봤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라는 말씀에 의지해 입대한 세 청년의 진중 분투기다.
-기독 청년들이기에 ‘여호와를 의뢰하고 마음을 다하여’ 입대했을 것 같다.
△이수빈(이하 수빈)=중학교 때부터 찬양팀에서 활동했다. 입대 전 찬양 인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군에서도 사역한다는 심정으로 생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재호(재호)=하나님과 온전히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나의 울타리가 되어줬던 가족과 교회를 떠나 묵상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유광재(광재)=선교의 지평을 넓힌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해병대 장교 임관을 받아 부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군 교회를 섬기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장교가 되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가.
△광재=우리 군은 종교적 편향성이 없다. 따라서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이 기계적으로 나눠졌다고 보면 된다. 신앙생활이 명령체계보다 우선될 수 없는 곳이 군이다. 나는 다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중대의 경우 대원이 60∼80명인데 중대장이 예수 정신으로 군 생활의 모범이 된다면 그것이 전도의 바탕 아니겠는가.
-갓 입대한 일·이등병에겐 아무래도 기독인의 자세가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재호=뭐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게 군대다. 종교 활동도 마찬가지다. 종교 행사가 있으면 강제적으로 이끌려 간다. 군은 긴장 완화의 통로로 종교 활동을 권한다. 고된 훈련에 육체적으로 힘들고 상명하복의 특성상 정신적으로 힘든 이등병에게 교회는 천국이다.
△수빈=졸병에게 종교활동은 도피처다. 자다 오는 경우가 많다. 군 교회의 경우 크리스천만 출석하지 않는다. 비크리스천 병사도 교회 가면 쉴 수 있으니까 오는 거다. 선임들로부터 ‘갈굼’(괴롭힘) 안 당하는 시간이다. 남자로 태어나 처음으로 절박해지는 곳이 군대이다 보니 교회 안 다녔던 친구도 출석한다. 먹을 것도 주고….
선한 영향력 끼치고 싶었던 마음, 입대해 보니…
-창군 이래 변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군의 종교 활동이 옛 방식 그대로인 것 같다. 기도로 시작한 군 생활에 대한 선교 비전이 흔들렸을 것 같은데.
△재호=신체적 욕구가 가장 앞섰다. 몸은 힘든데 군기는 세고 그러다 보니 입대 전 신앙의 동기부여가 사라졌다. 이유 없이 혼나고, 격리되고…그러다 보면 이유 없는 행동을 하게 되고…. 묵상을 통해 마음을 다잡곤 했다.
-성경 볼 시간은 있던가.
△재호=일·이등병이 성경 읽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상병이 됐다고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영육이 거대한 피로에 눌려 있기 때문이다.
△광재=나는 리더였다. 처음엔 병들에게 엄하게 했다. 내가 목소리 깔면 무서워 우는 병사도 있었다. 어느 순간 ‘이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나쁜 본성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상황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수빈=욕과 폭력 앞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상병쯤 되니 ‘애들’(하급병) 관리해야 하는데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 들 때 괴로웠다. 획일적이어야 하는 게 군대다. ‘획일 주입’에 열 올리다 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하는 공황 상태도 경험한다. 신앙인으로서 욕하고, 화내기 싫어 아예 말을 안 하기도 했다. GOP 근무는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얘기를 달고 살았다. 내 스스로에게 충격이었다. 격리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컸다. 그러니 신앙이 없는 이들은 나와 또 다른 자기 공황이 있었을 것이다.
-소위 ‘관심병사’ 사고가 여러분과 그리 멀리 있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수빈=총기 자살사고가 있었다. 하악(下顎)이 없었다. 끔찍했다. 하나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마음 속 기도로 형제의 구원을 하나님께 애원했다.
△광재=관심병사에겐 관심 등급 단계가 있다. 융화시키기 위해 상담을 하거나 정신과적 치료도 시킨다. 지휘하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 심한 친구가 들어왔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밖에서는 아주 멀쩡한 친구인데 군에선 자신의 고운 성품을 잃어버리는 거다. 특별한 이가 관심병사가 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관심병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군종 목사와의 상담 등 여러 경로의 관심과 관찰을 통해 체크한다. 그리고 군 복무에 부적합할 경우 전역시킨다.
-관심병사에게 여러분은 손을 내밀었을 것 같다.
△재호=부끄러운 얘기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그 관심병사 입에서 내 이름이라도 거론되면 괴로워지는 거다. 함께 부적응자로 찍힐까 우려하는 마음도 있고, 또 선임병들이 관심병사에 대한 책임을 미루기 때문이다. 관심병사를 위로하고 이끌기가 쉽지 않다. 그럴 수 있는 여건도 안 되고…. 군 상급자들은 그저 사고 없이 넘어 가면 최선이라고 판단한다.
태어나 처음 겪는 좌절…하나님 소리 절로 나와
-입대 전 하나님 중심으로 서 있던 분들인데 현실이 무겁다. 군인 교회가 병사들에게 도움을 주는가.
△광재=군종 장교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첫 부임지가 군인교회인 셈이다. 군종 장교도 리더십 형성 전이라 ‘군 안의 신앙생활’이라는 특수성을 이끌어 나가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수빈=기본적으로 예배 참석자들이 말씀을 경청하지 않는다. 앞서 얘기가 나왔지만 몸도, 마음도 지쳤기 때문이다. 그래도 군종 장교는 초심이어서 병사들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한다. 기도의 절실함이 우리에게도 다가든다. 하지만 초청 군종 목사 일부는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이라 그런지 좋은 말씀을 전하려고 열정을 다하긴 하시나 듣는 입장에서 좀 혼난다는 느낌이 든다. 아버지 잔소리 같다고 해야 하나(일동 웃음).
△재호=부대 내 종교는 병사를 위한다기보다 행사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의 경우 세례 안 받은 사람 손들라 해서 세례가 남발되기도 하더라. 또 특정 지휘관이 특정 종교인일 경우 그 아래 지휘관이 쫓아가기 때문에 쏠림 현상도 나온다.
-그래도 종교 비율이 있는데….
△광재=기독교인 비율로 따질 때 300명 부대의 경우 주일 출석이 50∼60명은 되어야 한다. 한데 종교활동 보고를 위해 체크하다 보면 1명만 가는 경우도 생긴다. 이것이 계급사회 속 인간의 나약함이나 이기가 잘 드러난 예이다. 태어나 처음 겪는 좌절이었다. 환경에 지배당하는 거다.
-곤고한 자들의 안식처가 교회이다. 이들을 이끌어 줘야 하는데 여러분의 현실은 아니었던 것 같고….
△광재=군인 교회 안에 돌봐 줄 간부들이 없다. 다들 태어나 처음 접한 계급 사회가 주는 비정한 현실에 흔들리고 있는데 간부들은 자기보다 더 높은 계급의 리더만 바라보고 움직인다. 그러니 간부들이 군인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없다 보니 군종병이나 나 같은 사람이 성가대 지휘도 하고, 신우회 회장도 하고, 찬양도 인도해야 하는 등 1인 다역이다. 그만큼 복음 안에서 이끌어줄 리더가 없다는 얘기다.
△수빈=GOP 근무는 한 소대끼리 독립적으로 산다. 그러면 철책을 따라 각 종교의 군종들이 돌면서 신앙생활을 돕는다. 기도도 해주고 특식도 준다. 취지는 바람직한데 너무 의무적, 실적 쌓기 위주라는 게 보인다. 형식적으로 지나치지 말고 군 생활의 어려움과 신앙적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약한 인간, 예수의 삶 뼈저리게 느껴
-청춘들이 직면한 현실이 안쓰럽고 한편으로 헤쳐 나가는 것이 자랑스럽다. 특히 자신의 명철보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세 분은 군 신앙생활을 통해 성숙된 신앙인이 됐다. 각기 비전을 얘기해 달라.
△재호=벙커 등에 혼자 근무를 서면서 하나님께 도와 달라는 기도를 많이 했다. 신체적으로 힘들지 않아도 군기가 세지니 선한 동기마저 사라졌다. 동기가 사라지니 하찮은 노동조차도 힘들더라. 이유 없이 행동하고 이유 없이 ‘갈굼’ 당하면서 내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알게 됐다. 그간 내가 나를 모르는 신앙생활을 한 것 아닌가 싶더라. 전역 후 하나님과의 대면을 통해 내가 속한 사회, 그리고 민족을 위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찾고 있는 중이다. 신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가르쳐 준 곳이 군대였다.
△수빈=입대 초반 너무 힘들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라며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앞으로 교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인간의 난폭함, 추악함, 본능적인 것을 군에서 경험하고 성경이 더 생생하게 읽혔다. 겪지 않았으면 미적지근한 상태로 끙끙 앓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식었을 것이다. 미지근한 크리스천으로 말이다. 전역 3개월째다. 하나님께서 최전방에 나를 보내신 이유를 알았다.
△광재=군 입대 전까지 보호받는 신앙생활을 했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게 군 신앙생활의 교훈이다. 우리에게 그렇게 악한 내면이 도사리고 있는 줄 몰랐다. 군은 신앙의 사각지대다. 영적으로 무장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입대를 앞둔 교회나 학교 후배, 제대한 이들에게 사명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군대를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관심병사에게 관심? 함께 부적응자로 찍힐까봐 손을 내밀지 못했다”
입력 2014-09-27 03:44 수정 2014-09-27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