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이 장사를 잘해서 점포의 가치가 높아지면 다음 상인은 그 점포에서 장사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상가권리금은 그 가치에 지불하는 돈이다. 임차상인의 권리여야 할 이 돈은 그동안 건물주의 권리로 탈바꿈하곤 했다. 계약기간이 끝나 건물주가 나가라 하면 권리금 받을 기회도 사라지기 일쑤다. 이렇게 권리금을 날리지 않으려면 임차상인은 건물주 앞에서 영원한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권리금이 법에 명시되지 않은 '관행'일 뿐이기 때문이다. 엄연히 실체가 존재하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던 이 돈을 마침내 정부가 법제화하기로 했다. 24일 발표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임차상인에게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했다. 건물주와 상인의 '갑을' 관계를 '상생'의 관계로 전환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런 법 개정을 이끌어낸 두 주역을 국민일보가 만났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권구백 대표는 서울 마포구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던 임차상인이었다. 지난해 5월 건물주가 재건축을 한다며 권 대표에게 가게를 비우라고 했다. 법으로 대항할 방법이 없었던 그는 권리금을 상당 부분 날린 채 카페를 접었다.
이후 비슷한 처지의 상인들과 맘상모를 결성했다. ‘권리금 폭탄 돌리기’의 희생자가 될 상인들을 도와 시위를 벌이며 권리금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25일에도 권리금 문제로 건물주와 분쟁 중인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에 가 있던 그는 “재건축 관련 조항이 빠진 권리금 법제화 방안은 반쪽짜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의 권리금 법제화 방안을 어떻게 보나.
“상가권리금을 법으로 인정해준 것, 지금은 제도권 밖에 있던 걸 법 테두리 안에 담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획기적이다. 하지만 약자인 임차상인 피해를 줄인다는 목적에 부합하려면 디테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어떤 부분이 필요한가.
“이달 초 임차상인 피해 사례집을 만들었다. 72건 사례가 모였는데 그중 32건이 재건축 관련 피해였다. 재건축은 건물 하나에서 상인 여러 명이 한꺼번에 쫓겨나는 구조다. 정말 피해가 크다.”
-건물주가 임차상인과 계약할 때 재건축 계획 여부를 분명히 밝히도록 지난해 규정이 생겼는데.
“정부는 그래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지만 지금 이 카페처럼 그 규정이 생기기 전에 계약한 수많은 상인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건물주가 재건축을 할 수 있는 것도 일정 부분은 임차상인이 열심히 일해 건물의 가치를 올려놨기 때문인데 정부안에선 이 부분이 고려되지 않았다.”
-입법 과정에 제안할 사안은.
“건물주가 해당 점포를 1년 이상 비워두거나 비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땐 권리금 회수 의무를 지지 않는 조항이 애매하다. 만약 건물주가 사회적 기업이나 요양원 등으로 해당 점포를 개조했다가 1년 뒤 다시 장사를 시작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환산보증금을 넘는 점포에 대해서는 임대료 상승률 제한이 없어 권리금을 미끼로 월세를 2∼3배 올리는 행위를 막기 어렵다. 권리금과 임대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쏙 빠졌다.”
-앞으로 맘상모 활동 계획은.
“정부가 이번에 법안을 내놨지만 여전히 맘상모 회원 중에만도 명도소송 중이거나 강제집행 위기에 처해있는 점포가 10곳이 넘는다. 이들이 쫓겨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 급선무다. 30일 피해 사례집을 발표하고 공청회를 통해 맘상모의 입장을 알려 나갈 계획이다.”
글·사진=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인터뷰-상가권리금 법제화 이끈 주역] “재건축 관련 조항 빠진 법제화 반쪽짜리 대책 될 수밖에 없다”
입력 2014-09-26 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