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 마리아홀에는 격정적인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61)은 ‘쇼팽 발라드 1번’을 폭풍이 몰아치듯 연주했다. 이 곡은 문학작품을 배경으로 해 화려함 속에 비극성을 담고 있다. 때론 꿈꾸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고 때론 황홀한 듯 몸을 흔들었다. 이윽고 연주가 끝나자 그는 감았던 눈을 뜨며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지휘보다는 피아노가 더 힘들다”며 웃었다.
그는 “지휘는 100여명의 단원과 함께해야 하는 것이라 책임이 무겁다. 개인적으로는 피아노 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럼에도 지휘를 하는 것은 말러의 심포니처럼 피아노로는 못하는 훌륭한 작품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날 연주는 생애 첫 피아노 리사이틀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였다. 정명훈은 10월 5일 경남 창원을 시작으로 대구(10월 12일), 서울(12월 27일), 고양(내년 1월 10일), 대전(1월 12일)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다섯 살 무렵 피아노와 초콜릿을 가장 좋아했던 정명훈은 스물한 살에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2위에 입상할 정도로 피아노 실력이 뛰어났지만, 이후 지휘로 전향했다.
그는 “앞으로도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선다는 생각은 안한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손주들을 위해 만든 첫 피아노 앨범 ‘정명훈, 피아노’의 레퍼토리를 직접 들려주고, 재단을 돕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정명훈은 서울 공연의 개런티 전액을 비영리재단인 미라클오브뮤직에 기부할 예정이다.
정명훈은 “40년 전 콩쿠르에 나갔을 때 기술적으로 힘든 곡보다는 느리고 잔잔한 곡을 선택하는 꾀를 부렸다(웃음). 지금도 손가락 기교보다는 마음에 있는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그는 뵈젠도르퍼 피아노를 새로 마련했다. “열여섯 살때 산 피아노(스타인웨이)가 아직까지 있는데 오래 돼 상태가 좋지 않다. 두 피아노는 칠 때 느낌도, 소리도 다르다. 프랑스 와인에 비유하자면 스타인웨이는 보르도, 뵈젠도르퍼는 버건디 와인”이라고 말했다.
“예순이 되면 나는 일로서의 음악을 그만두고 진짜 음악을 하고 싶었다. 내게 피아노는 진짜 음악이다.” 그가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다. 그는 당장 하던 일을 그만 둘 순 없지만 앞으로 일을 차차 줄여갈 것이라고 전했다.
잠깐 들려준 연주는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정명훈은 “피아니스트로 한번도 정말 좋은 연주를 해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보나마나 그럴 것이다. 큰 기대하지 말라”고 겸손해했다.
만약 지휘자 정명훈과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한 무대에 설 수 있다면 가장 어울리는 레퍼토리는 무엇일까. 그는 “브람스 콘체르트 협주곡 1번이다. 지휘와 피아니스트의 호흡이 잘 맞아야하고 둘 다 실력이 있어야하는 곡”이라고 꼽았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내게 피아노는 진짜 음악… 지휘보다 더 좋아”
입력 2014-09-26 0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