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약세와 달러 강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두 통화의 움직임이 너무 가팔라 일본 정부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경계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환율 리스크는 국내 증시에 부담이 되는 등 우리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원·엔 환율 급락이 지속될 경우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최근 원·엔 재정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인 100엔당 950원대로 떨어졌다. 원화와 엔화는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각각 달러화 대비 가치로 비교(재정환율)한다. 달러 강세로 원화도 약세를 띠고 있지만 엔화 약세가 더 빠르게 진행돼 원·엔 환율이 떨어지고 있다. 내년에는 100엔당 800원대로 하락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23일 “엔화 약세엔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있다”며 “지방경제와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경제재생담당상도 “엔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경제에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일본 정부 인사들이 환율에 대한 부담을 밝힌 것은 엔저의 수출 개선 효과에 관한 확신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준비은행장은 “달러 가치 급등은 미국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달러화가 구조적으로 강세를 띠는 ‘슈퍼 달러’ 국면에 진입한 가운데 연준의 핵심 인사가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강(强)달러와 엔저, 약(弱)유로화가 진행되는 현 상황을 두고 하나대투증권 소재용 연구원은 ‘환율전쟁 2라운드’라고 표현했다. 환율전쟁이란 각 나라가 자국 경제를 방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의 약세를 유도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소 연구원은 “2010년 1라운드는 달러 약세가 용인돼 미국이 승리를 거뒀다면, 2라운드에선 유로화와 엔화가 약세를 이어가며 우세승을 거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등 신흥국들이 반발은 하겠지만 유로존과 일본을 상대하기는 벅차다는 분석이다.
달러 강세는 미국의 유동성 축소로 한국 증시의 수급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또 엔화 약세는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에 부담을 준다. 25일 한 세미나에서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원·엔 환율 급락으로 수출 증가율이 떨어지고 기업 영업이익이 악화되는 등 우리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다”며 “과거 원·엔 환율 하락 이후 발생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가 재연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가속도 붙은 ‘엔저 强달러’… 한국, 2차 외환위기 오나
입력 2014-09-26 0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