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폐점 영화관·모텔·자전거포 현대미술관으로 변신한다

입력 2014-09-26 04:49
제주시에 새롭게 문을 연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 외관. 버려진 영화관을 활용한 것으로 외벽만 단장했을 뿐 내부 구조는 기존 소화전까지 그대로 살렸다. 아라리오뮤지엄 제공

제주도 제주시 탑동로는 한 때 제주의 명동이라 불렸다. 그 곳에 1999년 문을 연 탑동시네마는 제주도에 첫 복합상영관 개념을 도입한 영화관이었고 젊은이들에게 만남의 장소였다.

그러나 대기업 멀티플렉스들이 제주시 신제주 쪽에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은 구제주인 탑동을 외면했다. 결국 탑동시네마는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서 2005년 문을 닫았고 5층 건물은 폐가처럼 남겨졌다. 탑동시네마가 다음달 미술관으로 새롭게 문을 연다.

아라리오뮤지엄은 제주도 프로젝트를 통해 이 영화관과 함께 자전거 가게, 모텔로 쓰였던 낡은 건물들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다음 달 1일 개관을 앞두고 25일 제주시 탑동로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와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바이크샵’, 산지로에 있는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을 미리 찾았다.

이들 미술관들은 각 건물의 공간적 특성을 살리는 작품들로 채운 것이 특징이다. 공간도 건물 외벽만 붉은 색으로 단장했을 뿐 내부 구조는 벗겨진 페인트에서 소화전까지 모두 유지했다.

탑동시네마는 영화극장이라는 사이즈에 맞게 작품 자체의 규모가 컸다. 작품 제작에 대규모 인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작가 장환의 대작 ‘영웅 No2’, 길이만 21m가 넘는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배가 싣고 있는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과 스위스 출신의 설치 미술작가 우고 론디노네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장소적 특성도 살렸다. 영사실로 사용했던 공간은 거울에 반사되는 붉은 색 레이저로 빛의 자취를 드러내는 중국의 젊은 작가 리 후이의 ‘브이’로 채웠다. 탑동시네마 바로 옆 탑동바이크샵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김구림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7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동문모텔은 각각의 방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다. 일본 작가 아오노 후미아키의 ‘동문 모텔에서 꾼 꿈’은 동문모텔을 철거하면서 나온 건축 폐기물로 작품을 만들었다. 아라리오 뮤지엄 김창일 회장은 “현대미술이 발전하려면 전시를 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면서 “작품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공간 안에서 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탑동시네마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주현(48·여)씨는 “현대적 감각으로 꾸민 미술관이 들어서 침체된 이 지역에 활기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일 개관과 함께 3개 뮤지엄은 ‘By Destiny’라는 주제로 개관 기념 전시회를 연다.

제주=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