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은 지난달 13일 호주의 주택용 태양광 발전업체인 엠피리얼 지분 40%를 약 30억원에 사들였다. 연간 1GW(200만 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전력)에 이르는 호주 태양광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엠피리얼은 태양광 발전시스템을 소비자에게 팔고, 주택에 설치하는 일을 주로 한다.
한화는 2010년 이후 태양광 분야에서 왕성한 ‘인수·합병(M&A) 식욕’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독일의 태양광 판매·설치 업체를 추가 인수하는 방안, 발전소 운영 사업에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화는 태양광과는 달리 기존 사업은 정리하고 있다. 지난 6월 드림파마를 미국계 제약사 알보젠에 1945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같은 달에는 한화L&C의 건자재사업부를 모건스탠리PE에 넘겼다. 모건스탠리는 건자재사업부 지분 90%를 1413억원에 사들였다. 여기에다 편의점 업체 씨스페이스와 포장지 제조회사인 한화폴리드리머도 매물로 내놨다. 재계에서는 관광·숙박업체 한화호텔앤리조트, 합성고무 및 플라스틱 제조업체 에이치컴파운드 등도 팔 가능성이 제기된다.
비주력 사업을 정리해 주력사업인 석유화학, 첨단소재, 태양광에 전력투구하는 것이다. 특히 한화는 태양광에 집착하고 있다. 그런데 왜 태양광에 ‘올인’하는 것일까. 계속 적자인데도 꾸준하게 투자하는 이유가 뭘까. 그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의 기억
2008년 10월 24일, 한화는 포스코·GS 컨소시엄을 제치고 대우조선해양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6조원이 넘는 돈을 인수금액으로 제시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한화는 조선·해양플랜트라는 성장엔진을 장착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모든 역량을 대우조선에 쏟아부어 2012년까지 한화그룹 전체 매출 목표인 60조원 가운데 33%를 차지하는 20조원 규모의 대형 조선회사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한화그룹 관계자는 “재계 순위 10위권 안의 그룹을 보면 삼성은 전자, 현대차는 자동차, SK는 이동통신·정유, 롯데는 유통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계열사를 갖고 있다. 반면 우리는 알짜배기는 있지만 튀는 회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듬해 1월 한화는 대우조선 인수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재무부담 우려가 커진 데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대우조선 인수는 ‘못다 펼친 꿈’이 됐다.
확실한 ‘에이스 투수’를 확보하라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2008년 상황은 지금도 유효하다. 한화는 자산 37조630억원으로 재계 서열 15위(공기업 포함, 2014년 4월 기준)다. 계열사 51개를 보유한 영향력 있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다만 확실한 ‘에이스 투수’가 없다.
한화는 조선화약공판주식회사(화약공판)를 출발점으로 한다. 일본이 설립해 운영하다 해방과 함께 정부 손으로 떨어진 이 회사에서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는 지배인으로 일했다. 1952년 10월 정부가 민간 매각을 하자 사들여 한국화약을 설립했다.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불렸던 그는 화약 국산화 성공에 이어 플라스틱 호텔 증권 식음료 등으로 왕성하게 사업 영역을 넓혔다.
1981년 7월 부친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그룹 회장에 오른 김승연 회장은 이듬해 한양화학·한국다우케미칼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석유화학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2년에는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을 사들이며 금융을 성장동력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지난해 그룹 매출 38조5000억원을 올렸지만 당기순이익은 9500억원에 불과했다. 금융은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폭발적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석유화학은 전형적으로 경기를 타는 산업인 데다 시장을 장악하는 강력한 1등도 아니다.
이 때문에 한화는 일찍부터 제조업 분야에서 ‘강력한 캐시카우(Cash Cow·현금창출원)’를 확보하고 싶어 했다. 대우조선을 인수하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에 이어 세계 2위 조선회사다.
태양광, 언제 볕드나
한화는 태양광 산업이야말로 블루오션이라고 보고 있다. 시장이 활짝 열리기만 하면 한화가 그토록 갈망하던 강력한 제조기업, 시장을 장악하는 기업을 갖게 된다.
태양광 산업은 폴리실리콘(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실리콘 결정체), 웨이퍼(실리콘의 얇은 판), 태양전지(셀), 태양전지 모듈, 발전시스템으로 이어지는 5단계 구조를 갖고 있다. 한화는 이 제조과정을 모두 수직계열화했다. 가격경쟁력은 물론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올 들어 태양광 사업 전망도 밝아지고 있다. 중국 태양광 시장이 하반기에 회복세로 접어든 데다 신흥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화는 2020년을 분기점으로 본다. 단위당 설치비용이 계속 줄고 있어 2020년이면 정부 보조금이나 지원 없이 태양광 발전이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이때가 되면 한화그룹이 제조업과 금융이라는 두 날개를 달고 제대로 날아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
[기획] “대표선수로 키우자” 계열사 가지치며 태양광 올인… 이글거리는 한화의 꿈
입력 2014-09-26 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