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영화제와 표현의 자유

입력 2014-09-26 03:30
영화 팬들을 설레게 하는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올해 부산영화제의 사전 분위기는 국제적 문화행사마저 세월호 참사의 여파를 비켜가지 못한다는 현실을 깨달으면서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부산시가 세월호 참사의 의문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못하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는 논란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은 24일 “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부산국제영화제의 발전을 위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을 상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는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이 영화를 초청했다고 밝혔다. 부산시 측은 “외압은 아니다”라면서도 24일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영자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올해 영화제 예산 123억5000만원 가운데 60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부산시의 상영 반대 요구를 단순한 요청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원회의 유가족들도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다이빙벨의 영화제 상영에 반대했다.

영화제 주최 측은 7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프로그래머회가 정한 영화제 상영작을 조직위원장이나 다른 외부 인사가 제외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맞섰다. 이용관 위원장은 “상영 불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치적인 논란을 이유로 선정된 상영작을 취소한 예는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부산영화제가 국제적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국내의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면제하는 대신 자체 등급 부여를 허용하고, 각국에서 정치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명작들을 소개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했다는 점도 손꼽힌다.

영화제의 취지는 상업영화를 주된 대상으로 하는 대종상이나 아카데미 시상식과는 달리 새로운 아이디어, 과감한 실험 등을 권장함으로써 영화예술에서 새 지평을 열려는 데 있다. “다이빙벨 문제를 보도한 당사자가 만든 영화로 어느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이 담길 수 있다”는 우려는 관객들의 문화향수 결정권과 판단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정치적 외압을 행사하려는 것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쌓은 명성에 먹칠을 하는 행위다. 내달 6일과 10일 상영될 예정인 다이빙벨은 25일 예매 시작과 함께 일찌감치 매진됐다고 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