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 패배보다 아픈 건 무관심… 약체 비인기 종목의 눈물

입력 2014-09-26 04:47
한국 비치발리볼대표팀의 이은아가 25일 인천 송도글로벌대학 비치발리볼 간이경기장에서 열린 타지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다. 한국 대표팀은 2대 0 승리를 거두고 8강전에 진출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인천 송도글로벌대학 비치발리볼 간이경기장에서 열린 비치발리볼 예선 C조 경기. 접전 끝에 태국에 0대 2로 아깝게 패한 한국 여자대표팀의 이은아(26)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지막 점수를 내야할 때 뒷심이 부족했다”며 아쉬워했다.

윤혜숙(31)과 짝을 이룬 이은아는 불과 두달 전 비치발리볼 대표로 소집된 선수다. 이은아의 원래 소속은 실업 배구팀(양산시청). 여자 비치발리볼 예선 D조에 전하늘(20)과 함께 출전한 김가연(38) 역시 대구시 체육회에 속한 실업배구 선수다. 한국비치발리볼연맹은 선수 수급이 어려워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이어 이번에도 배구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대회가 끝나면 이들 대표팀은 해체 수순을 밟는다.

여자 크리켓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대한크리켓협회는 지난 3월 ‘여자 크리켓 국가대표 선수 공개 모집’이란 제목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개최국으로서 전 종목에 출전해야 했지만 대표로 뛸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골프선수, 주부 배드민턴 강사, 전 소프트볼 국가대표 선수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20여명이 모였다. 이들에게 주어진 훈련 기간은 불과 6개월. 일주일에 하루만 쉬며 아침 6시30분부터 저녁까지 맹훈련을 거듭했다.

비록 예선에서 중국·홍콩에 연달아 패하며 두 경기 만에 대회를 마무리했지만 한국 여자 크리켓은 가능성을 증명했다. 두 번째 상대였던 홍콩팀 선수들은 “6개월 남짓 훈련한 선수들 맞느냐”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외국팀 관계자도 “짧은 훈련 기간에 정말 빠르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여자 크리켓 대표팀의 향후 존속 여부는 미지수다. 6개월 간 구슬땀을 흘렸던 선수들은 지난 23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비인기 종목이라도 수십 년 간 ‘메달밭’ 지위를 확고히 다진 양궁, 펜싱 종목은 사정이 다르다. 대한양궁협회 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부회장이 맡고 있다. 펜싱 종목은 SKT 손길승 명예회장의 지원을 받고 있다. 승마 역시 한화그룹의 전폭적 지원 아래 부산아시안게임부터 매번 금메달 2개씩을 가져왔다.

‘약체’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목표는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이들 종목처럼 국민의 성원과 장기적인 지원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수영 박태환의 경우에서 보듯 한 사람의 스타플레이어나 반짝 성적으론 쉽지 않다. 선수·코치진을 지원하고 전지훈련과 각종 대회에 참가할 비용을 최소 몇 년간 후원할 수 있는 여력은 사실상 대기업 밖에 없지만 메달을 딸 가능성이 낮은 이들 종목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경기를 할 수 있는 대회다. 한국비치발리볼협회 허학성 전무는 “매년 대회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 전국을 뛰어다니는 신세”라며 “전국체전 종목에 선정돼 선수들이 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크리켓팀 이화연 총감독도 “경기를 계속 할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이 필요하다”며 “실업팀 등 인프라가 형성된다면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새로운 효자 종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인천=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