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와 날씨] 적벽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날씨를 읽었다

입력 2014-09-27 03:23

누적관객수 1700만명이 넘은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관은 일본 수군이 물러간 뒤 ‘천행’이었다고 말한다. ‘하늘이 도왔다’는 의미다. 명량 앞바다의 회오리치는 빠른 조류가 승전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단 13척으로 일본 수군 133척과 맞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급한 조류와 이를 활용한 전략이 주효했다. 이처럼 기상상황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 전투가 적지 않다.

◇기상이 가른 승패=2차 세계대전에서 승승장구하던 독일을 꺾고 연합군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승리 뒤에는 정확한 기상 예측이 있었다. 작전을 지휘한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은 “훌륭한 장군은 전략을 배우고, 유능한 장군은 병참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은 날씨를 아는 장군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44년 노르망디 작전에는 사상 최대인 병력 350만명이 동원됐다. 당초 작전기획팀이 기상예보팀과 협의해 택한 상륙작전일은 6월 5일이었다. 하지만 같은 달 3일부터 날씨가 급격히 나빠지더니 급기야 3개의 저기압대가 몰려왔다. 당시 연합군의 우세는 제공권 확보에 달려 있었다. 날씨가 나쁘면 상륙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셈이다.

군 수뇌부의 고심이 깊어졌다. 기상예보팀은 6월 6일 오후 일시적으로 좋은 날씨가 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하지만 그날 새벽까지도 기상은 좋아지지 않았다. 군 예보팀은 날씨가 개선될 것이라고 계속 강조했고 군 수뇌부는 이를 믿고 작전에 돌입했다. 반면 독일군 기상장교는 6일에도 악천후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했다. 독일군은 악천후로 며칠간 마음 놓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해안선 방어를 책임졌던 에르빈 롬멜 원수는 아내의 생일축하를 위해 독일로 귀국하기도 했다. 느슨해진 독일군의 경계를 뚫고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성공적인 기습공격으로 손꼽히는 진주만 폭격도 날씨 덕이 컸다. 일본 항공모함 6척과 구축함 11척, 순양함 4척, 잠수함 3척, 유조선 8척으로 이뤄진 대규모 선단이 1941년 11월 26일 일본을 떠나 진주만까지 12일간 3만5000마일을 항해했지만, 미군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악기상(惡氣象) 때문이었다. 일본이 택한 항로는 쿠로시오 난류와 쿠릴 한류가 만나는 곳으로 온도차가 커 짙은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었다. 기상학자들 사이에 ‘저기압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겨울에는 더 심했다. 짙은 안개와 비, 강풍을 뚫고 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이러한 악조건은 오히려 일본 함대를 완벽하게 숨겨주는 위장막이 됐다. 12월 7일 일본 함대에서 출격한 총 354대의 함재기는 진주만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날씨가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1942년 6월 미드웨이섬 인근에서 3일간 지속된 짙은 안개로 후방함대를 찾을 수 없었던 일본 제1항공함대는 무전 연락을 할지를 놓고 고심했다. 짙은 해무가 주는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 일본 해군은 결국 무전을 쳤다. 넓은 태평양에서 일본 전함을 찾지 못해 안달이 났던 미군 함대는 즉각 무전을 잡아내 일본 함대 위치를 파악했다. 일본 전함들은 미군 함재기의 밥이 돼 속속 침몰했다.

◇매일매일 날씨와 싸우는 기상전문부대=한국군 유일의 전문기상부대인 공군기상단이 관할하는 기상정보는 넓게는 전 지구를 아우른다. 좁게는 가로, 세로 500m 정도의 국지기상정보까지 다룬다.

특히 작전과 훈련이 실시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10분 단위로 작전기상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전달한 기상정보가 맞았는지는 현장에 설치된 CCTV 화면을 통해 꼼꼼히 점검한다. 공군기상단의 기상정보는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06년 12월 31일 한미연합사령부가 주관하던 기상예보 임무를 공군기상단에 모두 인계한 것도 높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군기상단은 전군 각 부서의 필요에 따라 항공기상 관측자료와 상층 및 고층 기상관측자료, 원격탐사자료, 예보자료, 기상특보, 기상통계자료, 항로기상자료, 연합작전을 위한 기상자료 등 다양한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정보’를 주고 있다. 최근 시작된 육군 포병작전 기상지원이 대표적이다. 포사격 시 초탄명중률과 적 피해 최대화를 위해서는 최대 탄도고(高)지점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전에는 직접 관측이 불가능해 포격실시 지점에서 신뢰도가 낮은 바람관측에 의존해 사격을 실시했다. 하지만 육군이 지표면에서 20㎞까지 500m 간격으로 제공되는 풍향과 풍속, 기온, 기압자료를 분석한 수치예보기상정보를 활용하면서 포의 명중률이 대폭 향상됐고 연간 50억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도 봤다.

공군기상단의 수치예보정보는 2011년 4월 고성능 슈퍼컴퓨터를 운영하면서 정확도가 한층 더 높아졌다. 중앙기상부장 기균도(48·공사 37기) 대령은 “공군이 자체 개발한 한반도 지형에 적합한 수치모델을 활용해 정확한 예보치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지역에 대한 기상정보도 꾸준히 수집해 오고 있다. 북한은 세계기상통신망을 통해 3시간 단위로 기상정보를 보고하고 있지만, 정확하지 않아 공군기상단은 유사시 북한에 대한 정확한 작전수행을 위한 자료를 축적 중이다.

육군이 공군기상자료를 활용하고 있는 반면 해군은 해상작전의 특수성을 감안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정보참모처에 기상과를 따로 설치해 해군작전에 필요한 전술기상정보를 만들고 있다. 해군은 백령도와 연평도, 진해 등 육상 25곳과 함정을 비롯한 해상 10곳에 관측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90여명의 기상작전요원들이 24시간 근무체제를 가동 중이다. 해상작전은 파고가 지나치게 높거나 안개가 많이 끼면 어려워지는 만큼 규모가 다른 함정들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잠수함의 경우 물속에 들어갔다 나올 때 기상이 적절해야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또 기상 변화에 따라 작전 중인 함정들을 안전한 곳으로 가도록 알려줘야 해 해상작전수행에서 기상정보는 필수적인 사안이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을 위한 ‘아덴만 여명작전’ 때에는 작전개시 시점을 결정하기 위해 기상요원들이 3일간 밤샘 작업을 하기도 했다. 20여년간 해군기상업무를 담당해 온 오귀영(45) 서기관은 “바다 날씨도 하늘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럽다”면서 “하지만 작전성공에 필수적인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