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라는 가요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던 계절이 다가온다. 이 노래는 차중락(1942∼1968)이라는 요절한 가수가 부른 노래다. 그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오늘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가수 차중락이 부른 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차중락이라는 동명이인에 대한 이야기다.
언젠가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한 청취자가 보내온 사연 가운데 차중락이라는 사람을 소개했다. 전북 남원 근처의 한 보육원에 한 청년이 있는데 그의 원래 이름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첫 돌도 채 되기 전에 이 보육원으로 왔다고 했다. 차가 많이 다니는 길에 떨어져 있던 한 아기를 수녀가 주운 것이다. 사연의 자초지종은 잘 모르지만 그는 달리는 차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아이가 장애가 있어서 버렸는지, 버려져서 장애가 생긴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아무튼 달리는 ‘차’ ‘중’에서 ‘떨어진(락)’ 아기였기에 그냥 차중락으로 이름이 붙은 것이다. 사연을 보낸 사람은 가끔 그 보육원에 갈 때마다 차중락씨를 만났다고 했다. 그의 해맑은 웃음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다 잊게 한다는 것이다. 차중락씨는 말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겨우 볼 수만 있다고 했다.
해가 돋는 청명한 날씨가 되면 그는 처마 밑에 앉아서 찾아온 그 처녀에게 손을 달라고 하고는 손바닥에 ‘해’라고 쓴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주 해맑은 웃음으로 자신의 만족스런 마음을 표현한다고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받고도 또 달라고 부르짖는가. 차·중·락, 그 이름을 기억하며 삶의 진정한 만족과 사람됨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행하는 신앙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가정의 교사인 부모와 교회학교의 교사가 가르친다는 의미는 학습자로 하여금 예수를 믿고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게 한다는 것은 참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다.
망가졌던 인간성이 회복되면 참인간이 되는 것이다. 구원이란 죄에서 영혼이 구원받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파괴된 인간성의 회복 없이 참구원은 그 진정한 의미를 잃는 것이다. “너희가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믿는다는 것은 본래의 인간회복을 말한다.
영어에 휴머니티(humanity)와 휴머니즘(humanism)이라는 단어가 있다. 비슷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의미는 반대로 해석될 수 있다. 휴머니티란 인간성이고, 휴머니즘은 인간주의 혹은 인본주의이다. 복음이 없고 하나님 없이는 인간성이 파괴되고 인본주의가 된다. 그러나 주님을 바로 믿고 그분 안에서 성장할 때는 인본주의가 파괴되고 인간됨이 회복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르칠 때 학습자로 하여금 참인간이 될 수 있도록 인간성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차중락씨가 불렀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처럼, 우리 앞에 있던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이 낙엽 따라 가버리고 말 것이다.
김도일 교수 (장신대 기독교교육과)
[시온의 소리-김도일]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입력 2014-09-26 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