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여유가 있는 사람의 돈을 다른 사람이 빌려 쓸 수 있도록 융통해주는 제도다. 자신의 돈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기에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는 금융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초래되는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손실을 경험했다.
최근 우리나라 금융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특히 금융회사를 감독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융감독기관의 신뢰도는 거의 바닥 수준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8월 28일부터 9월 4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금융신뢰지수는 89.5점에 그쳤다. 지수가 100보다 크면 긍정적인 답변이 많고, 100보다 작으면 부정적인 답변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에 대한 신뢰도가 낮게 나타난 데는 감독기관의 감독 효율성(61.3)과 소비자보호 노력(74.3)에 대한 불신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금융연구원의 분석이다.
감독기관이 금융회사를 효과적으로 감독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63.2%가 부정적으로 답했고 긍정적인 의견(8.3%)은 거의 없었다. 감독기관의 효율성은 금융에 대한 신뢰를 구성하는 9개 세부항목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감독기관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부정적 응답(54%)이 긍정적 답변(17.1%)의 3배에 달했다.
올해 초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고, 동양그룹 회사채 부실 판매에 이어 최근 KB사태까지 감독기관이 보여준 무책임한 태도가 금융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신뢰가 추락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처방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금융산업 발전 하려면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회사들의 자구 노력은 물론이고 금융감독 체계를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 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업계 사람들은 숨은 규제 개선보다 금융감독의 문제점을 많이 지적한다”고 말했다. 제도보다는 감독이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이 아시아의 금융 선진국인 싱가포르나 홍콩보다 강도가 세지는 않다. 다만 작은 사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엄격하면서 카드사 정보유출이나 KB사태처럼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는 책임을 모면하는 데 급급하고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가벼운 규제들은 과감히 풀어 업계가 창의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하고 담장을 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히 처벌해야 한다. 규제 중에서도 건전성 감독이나 소비자보호 부분은 강화해야 한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관(官)은 치(治)하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한 발언은 유명하다. 그만큼 관료들의 관치금융에 대한 추억은 여전하다.
현 정부 출범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모피아(옛 재무부 관료)’를 손볼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던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금융정책 및 감독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했는데도 모피아들이 변화를 거부해 크게 실망했다는 게 여권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금융감독 체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논의는 많았지만 결국 무위로 끝났다.
감사원이 오는 11월 금융감독원에 대한 기관운영 감사를 벌인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감사원이 금융감독 체계를 전반적으로 점검해 문제점을 개선토록 함으로써 금융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재중 경제부 차장 jjkim@kmib.co.kr
[뉴스룸에서-김재중] 감독기관이 자초한 금융 불신
입력 2014-09-26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