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총선 선거일은 수요일이었다. 오후에 수요예배에 참석하느라 교회에 갔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그날 묵상 기도 중에 나도 모르게 입으로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가 부르는 곳에 꼭 가겠습니다’라는 기도가 나왔다. 처음에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간증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언제나 하나님은 나로부터 받아내시고 싶으신 것을 어떡하든지 받아내시는 분이다. 18대 국회의원을 하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운동화를 신고 뛰어다녔다. 국회로, 지역구로 정신없이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법안을 심사하고, 민원을 듣고, 해결하고, 지역구 예산을 챙겼다. 타고난 에너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리고 주일은 간증하러 전국을 다녔다. 도대체 쉴 시간이 없었다. 거절하지 못하는 내 성격 탓에 주일 4번까지 간증한 적도 있었다.
도대체 나는 왜 간증을 할까. 스스로에게 묻고, 하나님께도 물었다. 내 젊은 날, 정신적 방황이 심했을 때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고, 사람들 만나는 게 싫었다. 죽고 싶은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말해주었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죽고 싶다가도 내 이야기를 듣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는 간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자. 그래서 요청이 오면 거절하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작은 시골교회도 갔었고, 개척교회도 갔었다. 그렇게 간증한 횟수가 18대 국회의원 4년간 100회를 넘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블로그에 쪽지 하나가 배달되었다. 보낸 사람은 생후 8개월 된 여아를 둔 29세 미혼모였다. 어릴 때는 교회를 다녔었는데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는 것,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이와 함께 죽으려고 했다가 우연히 내 간증을 듣게 되었고, 하나님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갑자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혹시나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도 의원님처럼 만들어주실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편지였다. 이상하게도 그 쪽지 편지를 읽으면서 내 가슴이 뛰었다. 답장해야 할 것 같았다. 아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기적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그러면 기적처럼 아기가 엄마에게 기적이 될 거라고 보냈다. 나도 모르게 ‘기적’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었다. 그녀에게서 다시 답장이 왔다. 놀라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하면서 아무리 검사님을 하셨다지만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꿰뚫어 보실 수 있냐고 하면서 자기 아이의 태명이 ‘기적’인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내용이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나를 향해서도, 간증을 계속하라는 주님의 메시지였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정치인인데, 간증까지 하면서 한 종교를 너무 티내면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그 충고에 대한 답변을 하나님께서 그녀를 통해 하신 것이다. ‘기어이 살라고, 죽지 말라고’. 이 말을 하려고 나는 간증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투를 앞둔 어느 날, 함께 막사를 쓰던 미군이 죽어 그의 빈 침대를 바라보고 있다가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며 기도했다고 한다. “나는 누구도 믿지 않아요, 나는 나만 믿어요. 그런데 오늘은 두려워요. 죽게 될까봐 두려워요. 만약 이곳(월남)에서 제가 죽는다면 조국에 두고 온 어린 딸은 어떡합니까.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나요.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제 목숨을 가져가신다면 대신 소원이 있습니다. 내 딸 미경이를 대한민국이 키워주세요.”
아버지의 그 기도. 내가 미워할 수 없는 그 아버지로 만들었다. 내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나의 간증은 어쩌면 하늘의 아버지를 향한 혈육 아버지의 ‘오래된 기도’인지도 모른다.
정리=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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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9-26 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