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상임위 배정의 정치학] 돈·표 되는 ‘알짜’ 치열… 선수·지역·黨전략 ‘복잡한 방정식’
입력 2014-09-27 03:41 수정 2014-09-27 15:29
최근 각종 입법로비 의혹 사건이 불거지면서 국회 상임위원회가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법을 만드는 신성한 공간이 이권과 금품이 판치는 탐욕의 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처지다. 여야 입법로비 사건이 터진 국토교통위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는 국회의원 사이에서는 '알짜' 상임위로 통한다. 진입 경쟁 역시 치열하다. 여야는 하반기 상임위를 배정하면서 상당한 당내 진통을 겪었다. 선수와 지역, 실세 여부, 관례, 당 전략 등 다양한 정치적 요소가 상임위 배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상임위 소관 정부부처 공무원들도 누구를 모셔야 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잘나가는 상임위 vs 잘 안나가는 상임위=의원들이 선호하는 상임위로는 정무위 교문위 국토위 산업통상자원위 예산결산특별위를 꼽을 수 있다. 공통된 특징은 의정활동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돈이 되거나 표가 된다.
예결위는 일단 들어가면 음으로 양으로 지역구 예산을 챙길 수 있다. 금융권과 한국전력 등을 관장하는 정무위는 출판기념회 등에서 수익이 짭짤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교문위는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를 모두 다루게 된 뒤로 선호도가 급상승했다. 교육재정교부금을 배정받아 지역구나 모교에 체육관과 급식시설을 짓도록 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으로는 도서관이나 문화예술시설 등을 개선할 수 있어 표밭 관리에 도움이 된다. 도로·철도·주택 등 지역구 숙원사업 해결에 유리한 국토위나 기업들이 포진한 산업위는 전통적인 선호 상임위다.
반면 국방위 외교통일위 정보위 등 안보 및 외교 문제를 다루는 상임위들은 큰 인기가 없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인데다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못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위 역시 공부할 것만 많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다만 대권주자 등 유력 정치인들은 외교안보 관련 상임위나 복지위 기재위 등을 일부러 선택하기도 한다. 국가 운영에 필요한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문재인 상임고문은 각각 복지위와 국방위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전 기재위였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는 농어촌 ‘고정 팬’이 있다. 새정치연합의 경우 8명 중 6명이 호남의 지역구 의원이다.
◇상임위 배정의 룰…경선도 하고, 1년씩 교대로 맡고=현재 상임위는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의원들의 희망사항 등을 종합해 대체로 지난 6월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원내대표와의 친소관계, 당내 역학구도 등이 복잡하게 작용한다. 위원장은 3선, 여야 간사는 재선 그룹에서 맡는 게 통상적인 관례다. 위원장은 여야 몫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법사위 산자위 복지위 국토교통위 등은 야당 몫, 정무위 미방위 예결위 정보위 등은 여당 몫이다.
관례와 선수 등을 적절히 따지면 쉬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국회 관계자는 26일 “상임위 배정 때만 되면 온갖 하마평이 오르내리지만 최종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말했다.
상임위 배정을 둘러싼 물밑 전쟁은 살벌하다. 여야 모두 하반기 상임위원장 배정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는데 해법은 달랐다. 새누리당은 정무위와 미방위에서 교통정리가 안 되자 경선을 실시했다. 그 결과 친박근혜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미방위원장, 최고위원을 지낸 정우택 의원은 정무위원장이 됐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법사위원장 산업위원장 교문위원장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교문위원장은 설훈 의원이 1년을 한 뒤 박주선 의원에게 넘기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일부 상임위원장도 1년 뒤 교대할 가능성이 있다.
◇여야 지도부, 양보의 미덕?…야당의 본부중대 된 기재위=여권 대권주자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다소 생뚱맞은 농해수위에 있다. 상임위 배정 전 부산지역 의원들과 논의를 했는데 다른 의원들이 농해수위를 선호하지 않아 배려하는 차원에서 맡았다는 게 김 대표 측 설명이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외통위, 친박근혜계 맏형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안행위,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복지위다.
새정치연합 원내 지도부는 기재위에 몰려 있다. 박영선 원내대표, 김영록 원내수석부대표, 박범계 원내대변인 등이다. 새정치연합 한 의원은 “기재위는 야당의 본부중대라고 불리고 있다”면서 “비선호 상임위이다 보니 당직을 맡은 지도부가 많이 배정됐다”고 귀띔했다.
선호도와 상관없이 여야가 전투력이 강한 의원들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새정치연합은 법제사법위가 중요하다. 사실상 모든 법안의 본회의 상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검찰 등 권력기관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새누리당은 청와대를 다루는 운영위를 중시한다.
엄기영 최승욱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