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25) 영화 ‘미션’을 떠올리다-파라과이 시우다드 델 에스떼에서

입력 2014-09-27 03:56
파라과이 시우다드 델 에스떼 한인교회에서 제공한 간식을 과라니 부족 마을 사람들이 먹고 있다.

아마존 부족이 배경이 된 영화 ‘미션’은 많은 이들이 꼽는 수작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회 가브리엘 신부와 노예 사냥꾼이던 로드리고. 한쪽은 선교를 위해 목숨을 걸고, 다른 한쪽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같은 곳을 찾았다. 두 남자가 과라니족을 보는 시각은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로드리고는 동생을 죽였고, 그가 비탄에 잠겨 죽기를 결심한 그때 가브리엘의 권유로 참회하기에 이른다.

이 무렵 스페인-포르투갈 영토 조약 때문에 함께 동고동락한 원주민들이 터전을 잃고 쫓겨 나가거나 노예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다. 둘은 마음을 모은다. 가브리엘은 기도와 무저항으로, 로드리고는 다시 원주민 꼬마로부터 받은 총과 칼을 통해 원주민들의 자유를 지켜주고자 했다.

그러나 둘 모두 적군에게 희생당하고, 결국 사건은 유야무야 덮어지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과라니족 아이들이 위선적인 문명 세계에 대한 일침을 가하듯 더 깊은 밀림으로 들어가는데 그때 올라가는 자막 ‘빛이 어둠을 비춰도 어둠이 이를 깨닫지 못하더라’는 성경의 한 구절은 영화 첫 장면인 거대한 폭포 상류에서 십자가에 묶여 떨어지는 장면과 더불어 많은 것을 시사하게 만든다. 영화가 끝나고 흐르는 오보에의 선율은 언제나 숙연한 감동을 준다.

나는 2009년 12월 영화 속 과라니족을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척박한 밀림에 살면서 문명을 거부한 이들도 있지만 이젠 외부 세계에 대해서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다. 시우다드 델 에스떼에 있는 한인교회에서는 정기적으로 과라니 부족 마을을 방문해 그들의 필요를 도와주고 있었다.

“우리가 파라과이 땅에 와서 돈 벌고 사는데 다시 그들에게 나누는 것이 덕이 아닐까요?”

이민 생활이 녹록지 않다. 어떤 가정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 어떤 이는 사업 실패로 쓸쓸히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남아서 뿌리를 내린 이들은 현지인들과 계층을 나눠 벽을 쌓기보다 교류하며 융화되는 걸로 선택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이다. 사도 바울이 설교한 유무상통이다. 덕분에 봉사활동 초창기였던 수년 전에는 마을 근처에 얼씬도 못했던 걸, 지금은 마을 추장이 먼저 나서서 반긴다. 무엇보다 어른들의 이런 본보기에 10대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파라과이 한인들은 세대 간 소통이 이뤄지는 건강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 갔을 때는 아직도 상의를 탈의하고 다니는 어른들과 하의까지 탈의한 아이들이 적잖게 보였었다. 이들에게 의류와 음식과 학용품을 나눠주고, 기도했다. 특히 아이들이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한 까닭에 여윈 얼굴이 음식을 보고 반색하는 표정에는 마음 한쪽이 아릿해져 왔다. 가난한 이웃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는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다운 교회가 그래서 내심 무척 고마웠다.

포르투갈 군대가 침공해 왔을 때나 지금이나 이들의 삶의 터를 노리는 이들 때문에 과라니족은 맘 편히 지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정부에서 제 마음대로 밀림의 땅을 계획 개발하고, 원주민들을 쫓아내면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생성됐다. 착한 과라니족은 투쟁보단 피신을 택했고, 지금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소수 부족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사는 것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 세대에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 이들에게 언제쯤 진정한 자유가 찾아올까. 영화 ‘미션’의 아픔이 감동으로 승화되어선지 이들에게 더욱 감정이입이 되며 마음을 쏟았던 하루였다. 예수님이 이들의 위로자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문종성(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