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십자가의 고난, 부활의 의미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지요. 본문 22∼23절에 적힌 기록은 이렇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베드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예수님)
예수님이 베드로를 책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인간이 하나님의 계획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절) 여기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의 구체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칭찬을 받을 만큼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아직 ‘자기를 부인’할만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을 먼저 고려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역시 비슷합니다. 물질과 건강을 위해, 인생의 성공을 위해 예수님을 찾습니다. 결국 믿음과 복음을 강조하면서도 우리는 ‘사람의 일’에만 집중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25절) 우리는 죽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희생의 삶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엔 이런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건 자신을 죽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엔 나를 죽여서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이 당신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위해 우리 목숨을 던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생명’이라는 걸 알 때, 내 목숨보다 예수님이 더 귀하다는 걸 깨달을 때 가능합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삶의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이 가능해집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은 내 인생만을 위해 살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꿈꿉니다. 성공을 좇습니다. 온 천하를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의 목숨까지 지켜주진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허투루 듣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얻든 우리의 목숨을 지켜줄 순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영원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하나님을 알고 십자가를 알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일입니다.
이병용 목사(부산 제일루터 교회)
[오늘의 설교]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입력 2014-09-26 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