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은 보통 지역 이름이 아니라 이 시대 교육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동네 이름이다. 어느 날 대치동 찻집에서 후배를 만났다. 그 찻집에는 40대로 보이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자녀를 학원에 두고 공부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엄마들이라는 것을.
나는 저 숨 막히는 시대를 건너왔다는 것에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다. 내가 늙었다는 것보다 그것은 더 어려워 보였다. 그때 거기서 일산에 사는 친척 동생을 만났다.
“여기 어쩐 일이야?”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이 있기는 하지만 설마 대치동까지 학원을 보낼까 싶어 놀라며 물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오늘의 교육 긴장감이 여기에 왔구나 싶었는데 그 다음 말이 나를 왠지 불안하게 만든다. 그 는 아들을 행운이 올 것 같은 학원의 상자 속에 넣고는 시간을 때우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그 주변의 백화점과 그 동네의 찻집 순례도 이미 졸업을 했다. 골목골목의 작은 상점들도 스무 번은 더 왔다갔다하고 시간 때우기에 좋은 찜질방도 숫자가 제법 오르고 있다.
“도서관에 가 책이라도 읽어.”
나는 그 말을 삼켰다. 뭐 고상하게 책 이야기가 먹힐 것 같지 않았다. 뭔가 불안해서 다른 엄마들에게 정보를 하나라도 얻어야 어느 학원 어느 선생님을 알게 되고 그 정신적 거래에 대해서도 이해가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마음 푹 놓고 도서관에서 우아하게 책을 읽고 시간 맞춰 아이를 태우고 집으로 가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뭔가 놓치고 있다는 불안과 초조는 별 이야기 거리도 없는 엄마들과 어울리게 하고 찻집에서 시간을 녹이게 만든다.
그렇다고 일산에서 대치동까지는 너무 가당치도 않는 거리이고 그 오랜 시간을 찻집, 찜질방, 백화점에서 보낸다는 것은 왠지 이 나라의 에너지가 펑펑 새고 있는 느낌이 있었다.
자칫 “네가 뭘 알아!”하고 덤빌 것 같은 팽팽한 기운은 무엇인가. 엄마들의 애잔한 ‘내 자식 건지기’ 희망에 누구도 아무 말 못할 것 같다. 가장 큰 불덩어리가 아니겠는가. 그 불을 누가 이기겠나. 가계의 적자도 부부의 불화도 이길 수 없다.
문득 “너는 나같이 살지 마라”라는 어느 아버지 말이 떠오르며 울컥한다. 어쩌겠는가. 대치동에도 가 보지 못하는 엄마들의 소외감은 두고라도 그 시간을 무엇으로 메우는지를 우리는 계속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신달자(시인)
[살며 사랑하며-신달자] 시간 때우기와 시간 메우기
입력 2014-09-26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