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스물 헌종(1827-1849)은 1847년 10월에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맞아들인다. 궁호는 순화궁. 이미 17세 때 맞이한 왕비가 승하한 뒤 계비를 간택하던 창경궁의 통명전에서 헌종이 보고 한눈에 반한 처자였다. 하지만 대왕대비와 왕대비 층층시하에서 젊은 왕은 선택권이 없었다. 새 왕비 효정왕후 홍씨가 왕자를 갖지 못하자 대비는 그때서야 헌종이 마음에 둔 처자를 후궁으로 간택하였다.
창덕궁 낙선재는 바로 그해에 지어져 헌종이 거처하였다. 다음해인 1848년 바로 옆에 지은 석복헌은 경빈 김씨의 처소가 되었다. 낙선재 뒤의 돌계단을 오르면 단아한 상량정이 나온다. 이 정자에서 보는 낙선재와 석복헌은 젊은 왕 헌종과 경빈 김씨의 애틋한 사랑처럼 아름답다. 궁중의 사랑 이야기가 봄꽃처럼 피어나거나 여름철 나뭇잎같이 우거지기 때문이다.
헌종은 외모가 헌칠했던 훈남이었다. 궁중복식 책인 ‘순화궁첩초(順和宮帖草)’가 보여주듯 경빈 김씨는 의상 감각이 뛰어났다. 잘 어울린 훈남훈녀의 사랑은 애석하게도 1년 반 뒤 헌종의 승하로 끝이 났다. 왕자를 낳지 못했던 경빈 김씨는 궁을 떠나야 했다. 문화재청은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11월 30일까지 매주 금·토·일에 ‘테마가 있는 창덕궁 후원 아침산책’ 예약을 받는다. 금요일의 주제가 ‘궁중여성들의 삶과 사랑’이다.
최성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톡톡! 한국의 문화유산] 헌종의 애틋한 사랑 서린 낙선재
입력 2014-09-26 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