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건축=일제 잔재’라는 편견을 넘어…

입력 2014-09-25 04:01
공간사옥은 한국 현대건축사의 획을 그은 작품이다. 1977년 공간사옥의 개축 공사 모습. 도코모모코리아 제공
도코모모 세계대회의 일환으로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을 둘러보는 해외 건축가들.
남산 자유센터를 구경하는 호주 건축가 나이저 루이스(오른쪽).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에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건물 바깥에 선 채 붉은 벽돌의 미술관 건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후 버스에 오른 일행이 간 곳은 종로구 율곡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건물.

두 건물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근·현대 건축사의 맥을 보여주는 대표 공간이라는 점과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이다. 둘 다 등록문화재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국군기무사령부 건물로 쓰이다 2013년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준공돼 경성의전으로 출발했다.

아라리오뮤지엄은 한국 현대 건축을 상징하는 건축가 고 김수근이 71년 지은 공간사옥이 주인이 바뀌어 지난 1일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투어에 나선 이들은 문화재청이 후원하고 한국근대건축보존회인 도코모모코리아,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제13회 도코모모 세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해외 건축가들이었다. 이 대회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일대에서 ‘충돌과 확장’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6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투어는 ‘한국의 근대 건축=일제 건물’이라는 편협한 시각을 확장하기 위해 마련됐다. 해외 건축가들은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장충단로 남산자유센터와 경동교회, 마포 절두산 성당 등 서울 시내 근·현대 건축물들을 둘러봤다.

이주연 도코모모코리아 부회장은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근대를 맞으면서 근·현대 건축 양식도 유럽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다르게 나타났다”면서 “일본은 유럽의 건축 양식을 일본화해 한국에 알렸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건축적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시기에 김수근, 김정수, 김중업, 나상진 등의 건축가들이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과 건축 기법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투어 일정에 포함된 건물들도 바로 건축가들의 그런 고민이 담긴 것들이다. 김수근이 건축한 남산 자유센터는 국제주의 양식에 따라 장식을 배제하고 단순한 형태로 표현했다. 거대한 노출 콘크리트가 멋스러웠던 건물 외벽은 세월이 흐르면서 페인트로 덧입혀졌지만 자연과 공감하는 한옥 양식을 내부 공간에 입힌 김수근의 고민을 느낄 수 있다.

절두산 성당은 건축가 이희태가 순교자들을 기념해 64년 지었다. 콘크리트로 만들었지만 기둥이나 보를 끼워 맞추는 목조 건축 방식인 가구식 구조를 갖췄다. 한옥 형태에 서양 건축을 접목한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엿보이는 건물이다.

해외 건축가들은 근·현대를 이끈 한국 건축가들의 치열한 고민에 감탄했다. 호주건축가 나이저 루이스는 “모더니즘 건축은 세계 어디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은 다른 것 같다”면서 “김수근의 건축 디자인 철학에 감명을 받았다. 특히 공간 사옥은 공간의 흐름과 질서를 탁월하게 구성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 기간에 맞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도코모모코리아와 공동 기획한 ‘장소의 재탄생 : 한국근대건축의 충돌과 확장’ 전시를 23일부터 시작했다. 한국 근대건축의 자생적 진화 과정을 국내외 전문가와 일반 시민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전시는 12월 14일까지 계속된다.

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도 내년 4월 26일까지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조화-건축가 김종성’전을 선보인다.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로 80∼90년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설계한 김종성은 이번 도코모모 세계대회 조직위원장이다.

도코모모인터내셔널은 근대 건축 유산의 기록과 보존을 위한 단체로 88년 네덜란드에서 결성돼 전 세계 70여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2004년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