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인터넷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요 문화다

입력 2014-09-26 03:06

‘거의 모든 IT의 역사’를 쓴 정지훈 박사(경희사이버대 모바일융합학과 교수)의 신작. 복잡하고 어려운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해설자로 정 박사만큼 적합한 이도 드물다. IT전문가이자 미래학자지만 독서가로 저자로도 유명한 그는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한 융합적 시각을 바탕으로 기술문명에 대한 친절한 해설자로, 또 예리한 비판자로 활동해 왔다.

이 책은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시기를 인터넷의 태동기로 보고 70년에 걸친 인터넷 역사를 개괄한다. 교양 차원의 객관적인 서술이 아니라 주제와 쟁점, 시각을 갖고 인터넷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가장 두드러진 주제는 인터넷은 기술이나 경제가 아니라 철학이요 문화라는 것이다. 저자의 집필 동기이기도 하다.

정 박사는 서문에서 “외국의 전문가들 중 어느 누구도 ‘플랫폼 전쟁’의 시대로 표현되는 IT와 인터넷 산업에 있어서 삼성전자가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면서 “인터넷의 기본 속성인 공동체 철학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산업과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 있다”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이 책은 실리콘밸리, 이더넷과 TCP/IP, 유닉스와 리눅스, 월드와이드웹, 넷스케이프와 익스플로러, 구글과 페이스북 등을 짚어나가며 인터넷의 역사를 보여주지만, 결국 인터넷의 정신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실리콘밸리를 만든 히피문화, 사람이 기계를 다루는 것이 아닌 기계와 상호작용한다는 철학, 소중한 정보를 여럿이 함께 나누는 공유정신, 치밀함이 아닌 즐거움으로 혁신한다는 해커정신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인터넷 역사를 보면, 경제적 부를 쌓으려는 자들이 행한 업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며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실험했던 이유는 결국 사회적 이익이며 사회적 가치였고, 이는 사회와 문화에 관점을 두는 인문학적 마인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정 박사는 이 책을 쓰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비운의 천재들을 드러내는 일에 각별히 공을 들였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을 때 온 세계가 추모했지만 그로부터 1주일 뒤 C언어를 창시한 데니스 리치의 부음은 단신으로 처리된 사실을 언급하고, “프로그램 언어를 만든 데니스 리치는 업적으로 따지자면 스티브 잡스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인물”이라고 재평가했다. 마우스를 완성한 더글라스 엥겔바트, 해커문화의 주도자 리처드 스툴만, 유닉스를 만들고 오픈소스운동을 창시한 켄 톰슨 등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인터넷의 현재와 미래를 다룬 마지막 장은 특히 흥미롭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사건을 들여다보고,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유튜브 등을 다룬다. 정 박사는 구글보다 페이스북이 인터넷 정신에 더 부합한다고 본다. “구글은 근본적으로 개발자와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은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