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로 짠 문·이과 통합교육 얼개… 학교는 혼란

입력 2014-09-25 04:30

교육부가 문과와 이과 구분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을 24일 발표했다. 교육과정은 초·중등 교육에서 무슨 내용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할지를 그린 ‘설계도’로, 문·이과 통합의 윤곽이 제시됐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대입제도 변경 사항은 2017학년도로 발표를 미뤘다. 교육과정과 짝을 이뤄야 할 대입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조차 제시되지 않아 ‘반쪽짜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교육과정·대입제도·교원양성·교과서 파트가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지 않아 교육과정 개정이 학교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무엇이 달라지나=이번 교육과정은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고교생이 되는 2018학년도부터 적용된다. 개편 내용은 ‘공통과목’을 도입해 문·이과 구분 없는 기본 소양을 기르도록 하고, 다양한 선택과목을 제시해 진로와 적성에 따라 선택적으로 학습하게 한다는 게 골자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생이 고교에 진학하면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사회 과학 등 6개 교과를 공통과목으로 배우게 된다(표 참조). 사회와 과학은 공통과목으로 신설되는 ‘통합사회’ ‘통합과학’으로 공부한다. 문과생은 사회, 이과생은 과학에 편중됐던 고교생의 학습 내용을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통해 모든 학생에게 기본 소양을 갖추게 한다는 취지다.

공통과목의 학습 수준은 중학교 3학년에서 다른 과목이 융합된 형태로 예상된다. 통합사회는 지리·일반사회·윤리·역사 등, 통합과학은 물리·화학·생명과학 등 과목이 대주제 중심으로 통합적으로 다뤄진다. 예를 들어 에너지와 환경이라는 대주제가 정해지면 중학교 수준에서 배웠던 화학 등 과목별 기본개념과 탐구방법을 통해 접근한다.

2학년부터는 ‘일반선택’과 ‘진로선택’을 골라 수업을 받는다. 공통과목에서 중학교 수준의 내용을 융합해 가르쳤다면 일반선택은 고교 단계에 해당한다. 진로선택은 좀더 심화된 단계로 진로탐색 등을 위한 과목이다. 만약 국어국문과를 지망하는 고교 2학년생의 경우 공통과목을 이수한 뒤 일반선택 과목에서 화법과 작문, 실용국어 등을 공부한다.

◇컨트롤타워 부재, 주먹구구로 진행되는 ‘백년대계’=새 교육과정은 문·이과 칸막이로 인해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고루 갖춘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는 점이 공감대를 얻어 추진됐다. 과거 2009년과 2011년 교육과정이 현장에 적용되기도 전에 또다시 문·이과 통합을 들고 나와 교육과정에 손을 댄 명분이었다. 이로 인해 이번 교육과정의 첫 대상인 현재 초등학교 6학년생은 중3까지는 2009·2011교육과정으로 교육을 받다가 고교에 진학하면 새 교육과정으로 교육을 받아야 할 처지다. 이미 짧은 기간 여러 차례 교육과정을 변경했으므로 좀더 정교하게 추진했어야 했다.

그러나 교육과정과 대입제도, 교원양성, 교과서가 따로 놀고 있어 현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입제도가 빠진 점을 우려한다. 고교생들이 ‘공통과목→일반선택→진로선택’ 순으로 학습을 진행하게 되는데 수능 범위가 확정되지 않았다. 범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어디까지 공부해야 할지 알 수 없으므로 과목들을 모조리 공부해야 하는 처지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사교육은 활개 친다.

교원정책, 대입정책 등을 묶어줄 구심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는 문·이과 통합안을 제시한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이 구심점이었다. 교육관료 출신 1호 장관으로 대입제도에 일가견이 있었다. 부서별로 흩어진 업무를 태스크포스 없이도 통일성을 가지고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후 ‘김명수 교수 임명 파동’ 등을 거치며 교육수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됐다.

게다가 황우여 장관은 지난 8월 취임 이후 핵심 간부에 대한 인사를 미루고 있다. 당초 7월로 예정됐던 인사였다. 교육부 관료는 인사가 나면 지방국립대 등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다. 책임 있게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을 총괄하는 교육정책실장도 공석이다. 최근 퇴임한 심은석 전 교육정책실장은 부하 직원의 비리에 연루되면서 지난 7월 3일부터 대기발령 상태였다. 교원정책을 다루는 학교정책관(국장급)도 비어 있다. 부서 간 협조체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개 과 단위(교육과정정책과)에서 문·이과 통합 설계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