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의 중진 의원들이 공개석상에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에 대해 쓴 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정책 방향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 추진 자체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어 당정 간 갈등이 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24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는 정부에 각을 세우는 발언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회의를 주재한 김무성 대표부터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을 문제 삼았다. 김 대표는 “국회에서 따질 일이 많을 것 같다”면서 “세금으로 편성된 예산인 만큼 허투루 쓰는 곳이 없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재정건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 심의·확정권을 가진 국회의 기본책무를 강조한 발언이지만, 재정건전성에 대한 그의 ‘소신’을 감안하면 뼈가 담긴 말이라는 분석이다.
김 대표는 재정건전성을 두고 경제 수장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 왔다. 단기적으로는 건전성이 다소 훼손되더라도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최 부총리의 경제정책 기조에 대해 김 대표는 여러 차례 우려를 표명했다. 공공기관과 공기업 부채까지 감안하면 재정건전성에 이미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한 당직자는 “여권 차기 대선주자 가운데 현재 선두인 김 대표 입장에서 재정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지 않겠느냐”고 했다.
심재철 의원은 증세 논란과 관련해 “(정부가) 솔직해져야 한다”면서 “증세를 하는데도 증세가 아니라는 변명은 국민의 신뢰를 잃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개헌에 대해서도 여당 내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여기저기서 “이번 기회에 당 보수혁신위원회를 통해 개헌 논의를 공식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재오 의원은 “보수혁신의 핵심은 개헌”이라며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바꾸지 않고는 나머지 잔가지의 혁신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김태호 최고위원은 통일에 대비한 개헌을, 이인제 최고위원은 당내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하며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일부 비주류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집권 2년차인 여당이 야당보다 먼저 개헌을 주장하고 나서는 건 이례적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이라는 것은 한번 시작이 되면 블랙홀처럼 모든 게 다 빠져들어서 이것저것 (해야) 할 것을 (해)낼 수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회의에서는 해양경찰청 해체에 대한 반대 목소리까지 나왔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후속 대책으로 국민 앞에 약속하고, 정부가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마당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4선의 이병석 의원은 “일시적으로 국민의 분노를 샀다고 하루아침에 없애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결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방에서 총기 난사가 벌어졌다고 해서 군대를 해체할 수 없는 일과 같다”는 비유를 내놓기도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당-정 갈등 격화되나… 정부 주요 정책에 쓴소리 쏟아내는 與 중진들
입력 2014-09-25 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