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하게 들리는 박근혜정부의 구호 가운데 ‘비정상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를 경제 분야에서 손꼽으라면 산업용 전기료 인상과 휴대전화 요금체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금 휴대전화 시장은 가격 정보의 일방적 차단, 소비자 차별, 끼워 팔기, 강제적 할부판매 등 온갖 불공정 행위가 난무하는 곳이다. 그래서 합리적 판단 하에 사고 파는 시장이 아니라 야바위판을 닮았다. 이런 휴대전화 노름판을 시장답게 만들겠다는 취지의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10월부터 시행되지만 규제개혁위원회는 24일 핵심적 내용인 분리공시제를 제외한 단통법 고시안을 확정했다. 분리공시제란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는 지원금과 휴대전화 제조사가 제공하는 장려금을 구분해 알리는 것이다.
지금은 이통사와 제조사의 지원금이 합쳐져 소비자에게 지급되기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은 이통사만 보조금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호갱님’들은 휴대전화 개통 때와 매달 통신요금을 낼 때 그중에 단말기 구입비와 통신요금이 각각 얼마인지 모르는 채 돈을 내고 있는 것이다. 단말기값이 통신요금 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에 너도 나도 고가의 프리미엄폰을 거리낌 없이 산다. 또한 단말기값을 일시불로 치르려면 할인 혜택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할부판매가 강제되고, 할부원금과 금리가 얼마인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만약 자동차를 이런 식으로 판다면 누가 참겠는가.
이번 규개위의 결정으로 단통법의 취지는 무색해졌다. 단통법은 이동통신사가 아닌 일반 유통망에서 중저가 단말기를 구입하거나 기존에 쓰던 단말기로 이동통신 서비스만 가입할 경우에도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을 하라는 ‘분리요금제’ 조항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보조금 가운데 이통사 부담분이 얼마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분리요금제는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분리공시제를 지지한 미래창조과학부가 의도했던 단말기 출고가 인하도 물 건너갔다. 더 큰 문제는 장려금과 단말기값이 들쭉날쭉한 지금 상황에서는 가격 차별에 따른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도, 제조업체 간 품질 경쟁도, 후발 제조업체의 설 땅도 모두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내수시장 위축과 휴대폰 수출 타격이 우려된다며 분리공시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위축되는 것은 국내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이다. 지금의 무질서한 시장에서는 불법 보조금을 동원한 고객 빼앗기 등의 보조금 경쟁과 이용자 차별, 휴대폰 낭비, 그리고 자금력이 풍부한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삼성전자로의 수요 쏠림 현상만 심화될 뿐이다. 삼성전자는 분리공시에 반대하는 이유가 비싸게 책정된 국내 단말기값을 감추려는 것이라는 의혹을 씻으려면 판매가를 공개해야 마땅하다.
[사설] 보조금 ‘분리공시’ 포함된 단통법 원안 관철을
입력 2014-09-25 0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