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입체관광지도 ‘엉터리 안내’

입력 2014-09-25 03:04

지난주에 슬로바키아를 비롯한 동유럽 4개국을 여행했다. 생소한 지역인데다 가이드 없이 홀로 여행하는 자유 일정이 많아 출발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대부분의 유럽 도시는 비슷비슷한 건물과 골목이 많아 자칫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데다 생소한 문자와 낯선 풍경에 맞닥뜨리는 여행자들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첫 번째 여행지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기차역이나 관광안내소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관광안내지도에는 도심의 관광자원과 함께 지하철이나 트램의 노선도가 일목요연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유럽 각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유레일의 노선도도 마찬가지였다. 배낭을 둘러멘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지도 한 장 들고 유럽 곳곳을 제집 드나들 듯 여행할 수 있도록 한 공신은 바로 만국 공용어인 관광안내지도이다.

그런데 IT 강국인 우리나라는 어떤가? 자동차나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을 통해 전국 어느 곳이나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첨단 시대를 살고 있지만 국내외 여행자들에게 유용한 관광안내지도는 여전히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광지 소개라는 취지와 달리 일반 지도에나 실려야 할 불필요한 정보가 많아 오히려 목적지를 찾는 데 방해가 되기 일쑤다. 또 관광안내소, 지하철 등 공공안내 그림표지도 국제 기준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전국의 지자체들이 발간하는 관광안내지도는 더욱 황당하다. 언제부턴가 지자체들은 입체적으로 그린 관광안내지도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산과 강, 바다, 도로, 관광지 등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듯 그린 입체지도는 지역의 관광자원을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입체 관광안내지도의 축적이 과장되거나 왜곡돼 실제로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청이나 군청을 중심으로 가까운 곳은 크게 그리고 먼 곳은 작게 표기하거나 생략했기 때문이다. 축적이 엉망이다 보니 현 위치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동서남북 방위도 정확하지 않고 고속도로나 국도의 분기점도 애매하다.

실제로 입체 관광안내지도에 표기된 등산로를 보고 산에 올랐다 큰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지도에는 등산로 입구와 정상이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대여섯 시간을 걸어야 할 정도로 멀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주 가까운 곳이 상당히 먼 곳처럼 묘사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 지도로서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기차역, 지하철, 관광안내소 등 공공안내 그림표지도 국제 표준이나 국내 표준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그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암호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전철이나 지하철 노선도도 개선이 필요하다. 노선도를 지도가 아닌 백지에 개념도로 표시하다 보니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충남 아산의 신창역과 경기도 용인의 송담대역이 인근에 위치한 역처럼 보인다. 물론 지하철역에는 지도 위에 제대로 그린 표지판이 붙어 있기도 하지만 여행자에게 필요한 휴대용 관광안내지도나 모바일 기기에는 개념도만 소개돼 있어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 관광객도 헷갈리기 일쑤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유치를 목표로 세우고 있고 현재의 추세라면 실제로 달성될 확률이 무척 높다. 이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으면 서울은 물론 지방 곳곳의 골목길까지 관광객들로 넘쳐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의 길잡이는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관광안내지도가 될 것이다.

실제 기반지도(Base Map)에 관광 주제와 관련된 부수적인 지도요소들을 적용해 매력 있고 이해하기 쉽게 제작한 국제적 수준의 관광안내지도야말로 한국관광의 첨병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