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성도들 재능기부로 행복한 웨딩마치… 광림교회서 결혼식 올린 콩고 망명객 커플

입력 2014-09-25 03:40 수정 2014-09-25 15:19
21일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만난 로베르(왼쪽)와 조제가 기도하고 있다. 두 사람은 고국의 내전을 피해 한국에 온 망명객으로 얼굴이 노출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강민석 선임기자

한가위를 하루 앞둔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김정석 목사)에서 이색 결혼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아프리카 콩고에서 온 한 커플. 결혼식이 시작되고 신랑 친구 10여명이 축가를 시작하자 식장은 순식간에 파티장으로 변했다. 하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추고 노래했다. 아프리카인 특유의 흥이 느껴진 결혼식이었다. 그런데 이들 두 사람은 왜 한국에서 백년가약을 맺었을까.

지난 21일 광림교회에서 이 커플을 만났다. 남자의 이름은 로베르(34), 여자의 이름은 조제(29)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姓)은 알 수 없었다. 사진 촬영도 뒷모습만 가능했다. 이유는 이들이 처한 상황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고국의 내전을 피해 한국에 온 망명객으로 언론 노출을 부담스러워했다.

“콩고에서 야당 당원이었는데 정치적 탄압이 너무 심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들을 고국에 남겨두고 2008년 혼자서 한국에 왔습니다. 지금은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로베르)

“아버지가 반정부 활동을 해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행방불명됐고 나머지 가족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저는 2011년 한국에 왔고요.”(조제)

두 사람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사는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고 있다. 안산에 사는 콩고 친구들을 통해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다. 연애를 시작한 건 2012년 5월부터다.

“조제의 밝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죠.”(로베르)

“첫눈에 반했던 건 아니에요(웃음). 하지만 가까이서 지켜보니 로베르가 굉장히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하더군요. 믿음직스러웠어요. 게다가 저한테 잘해주니 반할 수밖에 없었죠.”(조제)

두 사람은 모두 모태신앙이다. 로베르는 한국에 온 2008년부터 광림교회에 출석했고, 조제는 2011년 9월부터 이 교회에 다녔다. 둘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광림외국인제자훈련센터에서 활동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광림외국인제자훈련센터는 외국에서 온 유학생과 노동자 80여명으로 구성된 일종의 신앙공동체다. 회원들은 주일마다 각 언어권별로 모여 예배를 드린다.

로베르는 “한국교회는 콩고와 달리 성경을 가르쳐주는 시스템이 잘 돼 있다”며 “광림교회에 다니면서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경의 내용은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조제는 “많은 사람들과 신앙생활을 하면서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자평했다.

2년 넘게 연애를 했지만 두 사람에게 결혼은 언감생심이었다. 로베르와 조제에겐 돈이 없었다. 하지만 광림교회가 예식 공간을 제공하고 성도들이 ‘재능 기부’에 나서면서 웨딩마치를 울릴 수 있었다. 성도들은 로베르에게 턱시도를 빌려주었고, 조제에겐 부케를 선물했다. 하객들 식사는 교회가 책임졌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 비용 중 부담한 건 예물 비용 정도였다.

“가족들이 참석할 수 없어 아쉬웠어요. 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던 결혼식을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가족들과 통화를 했는데 모두 저희의 시작을 축복해줬어요.”(조제)

“자식을 4∼5명은 낳고 싶어요.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으로 키워야죠(웃음).”(로베르)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