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도를 보면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과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도가 오스트리아 국경과 가까워 빈에서 기차나 버스로 1시간 거리에 불과하다. 당연히 브라티슬라바를 찾는 관광객들은 빈 여행길에 잠시 짬을 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해 ‘유럽의 배꼽’으로 불리는 슬로바키아는 오랫동안 헝가리의 지배를 받아온 약소국으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이어왔다. 19세기에 민족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면서 인접국인 체코와 연방을 결성해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로 거듭났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과 공산화로 우여곡절을 겪은 슬로바키아는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이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면서 비로소 꿈에 그리던 독립을 쟁취했다.
슬로바키아의 가슴 아픈 역사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중간에 우뚝 솟은 슬라빈 언덕의 독립기념탑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오벨리스크 모양의 독립기념탑 앞에 위치한 6개의 장방형 잔디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대항해 싸우다 전사한 슬로바키아와 소련의 무명용사 6000여명이 잠들어 있다.
브라티슬라바의 랜드마크는 테이블을 엎어놓은 것처럼 보여 ‘테이블 캐슬’로 불리는 브라티슬라바 성이다. 11세기에 건립된 브라티슬라바 성은 나폴레옹 전쟁 때 불탔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재건된 건물로 지금은 역사박물관과 민속음악박물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에 둘러싸인 장방형의 중정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공연이 열렸던 곳.
높은 언덕에 위치한 브라티슬라바 성은 강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도나우 강과 시가지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뷰 포인트이다.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뉴브리지의 인도교에서 보는 브라티슬라바 성의 야경은 한 장의 그림엽서나 마찬가지. 경관조명에 젖은 노란색 성벽과 하얀색 건물, 그리고 빨간색 뾰족탑이 짙은 어둠 속에서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
브라티슬라바 성 아래의 구시가지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성 마르틴 대성당은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건물이다. 1452년 완공된 마르틴 대성당은 헝가리 합스부르크 가문의 왕 11명이 대관식을 올렸던 역사적 장소로 85m 높이의 성당 타워에는 금으로 도금된 받침대 위에 높이 1m, 무게 300㎏의 헝가리 왕관 복제품이 보존되어 있다. 베토벤의 장엄미사가 처음 연주된 곳으로 유명한 마르틴 대성당도 야경이 황홀하다.
구시가지의 관문은 미하엘 성탑문이다. 슬로바키아에서 건물 폭이 가장 좁은 곳으로 유명한 케밥 가게를 지나 미하엘 성탑문을 통과하면 옆으로 브라티슬라바의 여느 골목과 달리 낡고 음산한 골목 입구에 빨간색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두상 하나가 걸려있다. 1844년까지 범죄자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던 망나니가 대대로 살던 골목이라는 표지이다. 프랑스 등 여느 유럽 국가와 달리 슬로바키아는 범죄자의 목을 도끼로 내리쳐 사형을 집행했다고 한다. 마지막 사형집행인은 여성으로 그녀는 자신의 남편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는 얄궂은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한다.
미하엘 성탑문에서 시청사 앞의 중앙광장까지 이어지는 벤투르스카 거리는 좁은 골목길로 음식점과 노천카페가 즐비하다.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리스트가 9살 때 연주회를 열었던 황갈색의 데 파울리 궁도 이 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브라티슬라바의 구시가지 건물은 대부분 은은한 파스텔 톤으로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졌다. 동화 속 풍경 같은 중세 골목은 동유럽의 여느 골목과 달리 고즈넉하다. 오전의 노천카페는 커피 향을 음미하며 홀로 사색을 즐기는 노인과 지도를 펴놓고 갈 길을 고민하는 젊은 여행자 몇몇뿐으로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난다.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성 엘리자베스 교회이다. 아르누보 양식의 교회는 건물 외부와 내부가 모두 파스텔 톤의 푸른색이라 블루처치(Blue Church)로 불린다. 중후한 모습의 동유럽 교회와 달리 스머프 마을의 교회 같은 블루처치에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블루처치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경건해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된다.
브라티슬라바는 스토리텔링으로 성공한 도시이기도 하다. 프라하에 비해 볼 것이 별로 없다 보니 관광객의 발길도 뜸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던 지역 예술가들이 1960년대에 “볼 것이 없으면 만들자”며 서로 힘을 모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명물이 구시가지 골목 곳곳에 위치한 숨어 있는 동상들이다.
숨어 있는 동상은 벽 뒤에 숨어서 몰래 사진을 찍은 파파라치, 벤치 뒤에서 관광객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는 나폴레옹, 그리고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인사하는 사람 등이다. 이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상은 맨홀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맨홀맨으로 브라티슬라바를 찾은 관광객들은 너나없이 맨홀맨 옆에 엎드려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베토벤의 장엄미사 흐르던 중세골목…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
입력 2014-10-02 0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