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서면 ‘얘기’가 통했다. 엄마들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의 ‘유모차 부대’를 시작으로 꾸준히 각종 사회 문제에서 목소리를 높여 왔다. 먹거리 교육 안전 등 아이와 직결된 문제가 이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모성에 기반을 둔 이들의 행동은 진정성 있는 집단행동이라는 평가와 함께 다른 사회집단의 공감까지 이끌어내는 효과를 가져왔다.
◇“밥이나 하지” 비난도=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엄마’라고 하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보다 빨래를 개는 뒷모습이나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따뜻한 주방의 이미지와 더 잘 연결된다. 이 같은 고정관념 때문에 엄마들이 사회적 문제에 의견을 내는 일에 공공연히 반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광우병 파동이 온 나라를 휩쓸었던 2008년 5월, 엄마들이 처음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왔을 때 곳곳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이들을 바라봤다. ‘집에서 밥이나 하지 왜 나왔느냐’ ‘국가전복 세력이다’ ‘돈 받고 하는 일이다’ ‘시위를 빙자한 아동학대다’….
실제로 그해 10월 국회에서는 유모차 부대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이 “먹을거리가 문제여서 촛불집회에 나왔다면 멜라민 파동 때도 유모차 부대가 나왔어야 되는 것 아니냐. 이는 촛불집회가 정치적 배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발언한 게 문제였다. 이에 대해 당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해 유모차 부대의 정치성을 둘러싼 논란이 가속화됐다. 유모차 부대에 참여했던 엄마들은 이후로도 1년여 동안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는 등 진통을 겪었다.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그래도 모성은 강력했다. 이어진 무상급식 파동부터 올 들어 세월호 침몰 사건, 가장 최근에는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까지 엄마들은 꿋꿋하게 여론의 한 축을 자처해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적지 않은 사회적 관심을 받았다. 2010년 6·2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지난해 ‘갑질’ 남양유업 불매운동 등 일부 사회 문제에서는 아예 이슈를 주도해 나가기도 했다. 사회 문제에 분노하는 엄마들을 일컫는 ‘앵그리맘(Angry Mom)’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들이 피켓을 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엄마’이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문제는 곧 내 아이가 먹는 밥의 질과 직결되고,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는 내 아이의 역사인식으로 이어진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아이가 부당함이나 불의와 마주하게 된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 수 있는 본능적 모성이 엄마들을 광장 한복판으로 끌어냈다.
엄마들의 집단 시위가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짜일 수 있는 데는 온라인의 역할도 컸다.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1970, 80년대생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엄마들 간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됐고, 이후 자연스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공론의 장이 형성됐다.
부작용도 생겼다. 최근에는 일부 엄마 집단이 정치적 이념을 전면에 내걸고 각종 시위에 참여하면서 보혁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가 됐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두고 벌어진 ‘보수 엄마단체’와 ‘진보 엄마단체’ 간 신경전이 그 대표적인 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대 진영에 대항한다는 측면에서 활동하다 보니 건전하고 합리적인 절차나 여론 형성과 동떨어진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세대 간 갈등이 엄마들 사이에서도 재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극단적 엄마 세력이 전체 엄마들의 진정성을 해쳐 결국에는 엄마 집단의 목소리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실정이다.
정부경 전수민 기자 vicky@kmib.co.kr
[앵그리맘으로 표출된 ‘모성의 사회운동화’] 아이를 위한 집단행동, 공감대 확산 큰 울림
입력 2014-09-24 04:08